아남반도체 630억 손실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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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아남반도체가 해외에 역외펀드를 설립할 당시 금융기관들과 불리한 조건으로 맺은 확약서(Letter of Commitment)가 법적 효력이 있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아남반도체는 이에 따라 6백30억원대의 금융 부담을 떠안을 위기에 놓였다.

서울지법 민사합의21부(재판장 洪基宗부장판사)는 24일 외환은행 등 5개 시중은행이 "펀드 투자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하면 아남 측이 채무에 대한 보증 책임을 지는 내용의 확약서를 체결한 만큼 손실 부분을 책임지라"며 아남반도체를 상대로 낸 6백30여억원의 출자금 지급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금융기관들이 손실 부분을 신주 인수 대신 '금전'으로 달라고 청구해 이를 기각한다"며 "그러나 아남반도체는 확약서상 의무는 부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5개 시중은행이 금전 대신 확약서대로 아남반도체에 4천8백60만달러(약 6백30억원)어치의 신주를 인수하라고 요구할 경우 아남반도체 측은 그만큼의 비용을 부담해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

아남반도체는 1996~97년 말레이시아에 투자 목적의 역외펀드를 설립하면서 이에 투자한 5개 금융기관과 '펀드 보유 자산의 가치가 일정비율 이하로 하락할 경우 추가로 주식을 인수하겠다'는 확약서를 체결했다.

하지만 펀드가 부실 운용으로 원금마저 상당부분 까먹자 채권 은행단은 2001년 9월 아남반도체에 이 펀드의 주식 4천8백60만달러어치를 배당하기로 결의했다. 아남반도체 측은 이에 대해 "확약서는 당시 김주진 대표이사가 지인이었던 김석기 전 중앙종금 회장에 속아 체결한 것이고, 이사회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무효"라며 주식 인수를 거부해왔다.

한편 金전회장은 1999년 골드뱅크의 6백60억원대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돼 홍콩으로 도피한 뒤 현재 검찰의 수배를 받고 있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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