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업인들의 절규가 안 들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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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경제5단체가 노동계의 최근 잇따른 총파업을 향해 내놓은 성명은 점점 커가는 사회.경제혼란을 더 이상 두고볼 수 없다는 인내의 한계선에서 국민 모두에게 보내온 최후통첩 같은 것이다. "망국적 파업이 이런 식으로 계속되면 회사문을 닫고 해외로 갈 수밖에 없다"는 말은 사업보국(報國)이 사명인 경제인들로선 결코 내놓아선 안될 격한 목소리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이 시점에 절실한 호소로 와닿는 것은 끝모를 혼돈 속에 이러다간 정말 경제가, 나라가 떠내려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국민의 뇌리에 공통되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가 안팎의 혼란 속에 기업들의 투자심리 위축과 불투명한 수출 등 총체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음은 더 설명이 필요치 않다. 그나마 이라크전의 종식에 사스 불안이 가시면서 바깥에 한 숨 돌렸다 싶자 노사분규가 발목을 잡고 이로 인해 경제현안 해결은 완전히 뒷전에 밀린 양상이다.

노동문제에 대한 정부의 신뢰는 이미 바닥 모르게 된 지 오래다. 조흥은행의 경우만 해도 인수.합병의 주 목적은 구조조정과 인력감축이었는데 임금을 올려주고 인력도 안 줄인다면 합병은 왜 했는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면서도 경제부총리는 불법파업의 협상테이블에 나가앉다 못해 불법파업이라도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푸는 게 우선이라고 태연히 말하고 있다. 거듭된 혼선과 말바꿈으로 해서 대통령과 경제정책의 총수가 향후 불법파업이 또 일어나면 어떻게 대처하겠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대구 등 어제의 지하철 파업 외에도 총파업 공세가 줄지어 있는 데다 양대 노총은 상호경쟁적인 세(勢)과시로 혼란을 키우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경제를 어떻게 회복시키며, 새로운 산업동력 없이 장차 무엇으로 먹고 살겠는가. 현 정권 등장 이후 더 큰 우려는 경제의 파이를 키워놓은 게 없으면서 분배만큼은 더 할 수 있다고 경제를 과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투자를 계속하지 못하면 일자리도 생기지 않고 경쟁력도 잃는데 기업들은 이런 노사현실하에서는투자는 고사하고, 외국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제라도 정부가 중심을 잡아 혼란을 잠재우고 경제를 건져야 한다. 기업가들이 신바람 나게 일할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 개혁의 목표도 바로 그것이 돼야 한다.

노동계는 투쟁 일변도의 파업은 피해가 결국 그들 자신과 국민경제에 돌아간다는 엄연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경제인들의 호소는 표류하는 경제를 지금 추스르지 못하면 그 나마의 시간도 희망도 사라진다는 절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