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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흉한 워싱턴, 테러 공포로 번지는 무슬림포비아

중앙일보

입력

 
지난 13일(현지시간) 129명의 희생자를 낸 파리 테러 이후 서방에서 무슬림 포비아가 번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 사는 무슬림 중 이슬람국가(IS) 등을 추종하는 극단 세력이 파리 테러와 비슷한 ‘소프트 타깃’ 테러를 자행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무슬림 포비아는 서방에 반(反) 이민 정서를 확산시키며 극우 세력의 득세를 돕고 있다.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파리 테러에도 시리아 난민 수용 계획을 고수하겠다고 밝혔지만 미국 50개주의 절반을 넘는 27개주가 수용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공화당 대선 주자들도 가세했다. 공화당의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1만명을 받았는데 9999명은 괜찮다 해도 1명이 잘 훈련된 IS 조직원이라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공화당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도 “제정신이라면 시리아 난민 수만 명을 받으려 하겠는가”라며 “(오바마의 난민 정책은) 완전히 미친 짓”이라고 비난했다.

무슬림 포비아엔 도널드 트럼프도 빠지지 않았다. 트럼프는 “미국의 모스크(이슬람 사원)를 감시해야 한다”며 “하기 싫은 일이지만 모스크 폐쇄를 강력히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토안보위원회 소속 피터 킹 하원의원도 “무슬림 커뮤니티에 대한 감시를 늘려야 한다”고 했다.

무슬림 포비아는 유럽에선 이미 확장 일로다. 15일 독일 드레스덴에선 1만여명이 넘는 규모의 반이슬람 집회가 열렸다. 독일의 극우단체 페기다(PEGIDA, 유럽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가 주도한 집회에서 페기다 수장인 지그프리트 데브리츠는 “파리 테러는 완전히 다른 가치를 가진 국가와 지역 출신을 받아들인 이민 정책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연쇄 테러를 당한 프랑스에서 베르나르 카즈뇌브 프랑스 내무장관은 “증오를 설파하는 모스크를 해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극우 정당 국민전선의 마리 르펜 대표는 “난민 수용을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르펜 대표는 부적격 이민자에 대한 추방도 주장하고 있다.

동유럽에선 폴란드 우파 정부가 14일 유럽연합(EU)의 난민 분산수용 계획을 이행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 이어 다음달 난민 유입 통로가 되는 국경을 봉쇄하겠다고 밝혔다. 슬로베니아ㆍ체코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는 “기독교에 기반한 유럽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 무슬림 이민자를 수용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올 9월 터키 해변에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가 숨진 채 발견되면서 확산된 유럽의 난민 포용정책이 이번 테러로 급속히 냉각되는 분위기다.

◇공포에 편승한 온라인 헛소문=파리 테러 이후 온라인에선 헛소문과 조작이 번지고 있다. 수염을 기른 청년이 방탄 조끼를 입고 코란을 들고 있는 ‘테러범 사진’이 소셜 미디어에 돌아다녔지만 이는 포토숍으로 조작된 것으로 나타났다.

시크교도인 캐나다 청년이 찍은 사진에서 아이패드를 코란으로 바꿔치기하고 방탄조끼를 덮어 씌워 테러범으로 몰았다. 파리 테러 직후 우버가 요금을 할증했다는 소문도 트위터에 돌았다. 그러나 우버는 테러 직후 할증 기능을 차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버가 다급해진 승객이 몰리는 초유의 테러 사태를 악용했다는 식으로 조작한 헛소문이었다.

또 미국이 파리 테러 희생자를 애도하기 위해 IS 공습용 폭탄 위에 ‘파리에서, 사랑을 담아(From Paris, With Love)’라는 문구를 썼다며 트위터 사진을 국내외 언론이 소개했으나 이는 조작일 가능성이 크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17일 보도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서울=백민경 기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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