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의 反 금병매] (8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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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독살이라는 것을 직감한 하구는 자기도 모르게 몸이 떨려왔다. 하구가 다시 한번 얼굴의 일곱 구멍들을 검시해 보았다. 피가 흘러나온 흔적이 분명히 보였다.

이것은 배를 갈라보지 않고도 독살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명백한 증거였다. 왜 서문경이 자기에게 제법 많은 돈을 안겨주고 추후에도 돈을 더 주겠다고 약속했는지 그제야 가리사니가 확실히 잡혔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독살이라는 것을 밝히고 살인자를 조사하여 체포하도록 해야 하는가. 그러면 십중팔구 독살 범죄에 서문경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었다.

아니면 금련이 단독으로 남편을 살해하고 그 사실을 서문경에게 알리어 범죄 사실이 탄로나지 않도록 사전에 조처해달라고 부탁했는지도 몰랐다.

아무튼 무대가 독살되었다고 밝히더라도 범인을 가려내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 분명하였다. 관련자들이 서로 말을 맞추어버리면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었다. 범죄의 증거물들은 시신을 제외하고는 이미 깨끗이 치워버렸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시간을 끌게 되면 하구 자신의 생명도 위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대의 입으로 들어간 독약이 자신의 입에도 들어오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무엇보다 서문경이 현청의 고위 관리들과 친분이 두텁다는 사실이 하구에게 큰 부담을 안겨주었다. 또한 서문경의 돈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다시 돌려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하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어중간하게 해결해 놓으면 무대의 동생 무송이 돌아와서 시신을 검시한 하구에게도 어떤 복수를 할지 몰랐다.

그렇다면 완전 자연사로 처리하여 시신을 화장해버리는 편이 가장 나을 법하였다. 그런데 다른 검시관들을 따돌리는 것도 문제였다. 아니나 다를까 검시관 하나가 무대의 시신을 들여다보더니 하구에게 물었다.

"이 시신이 왜 이렇죠? 눈 코 입에서 피가 흘러나와 있고, 입술이 자줏빛인 데다 이빨로 얼마나 세게 깨물었는지 이빨 자국이 입술에 선명하게 나 있어요. 이거 독…."

독살 아닌가요, 라고 물을 것이 분명하여 하구가 얼른 말을 끊어 먹었다.

"날씨가 더울 때는 시신이 이렇게 변색될 수도 있으니 함부로 속단하지 마. 입술에 이빨 자국이 난 것이야 병으로 고통스러우니 입술을 깨물었을 수도 있는 거고."

"그래도 이상해요. 오늘 염하는 것을 미루고 하루 이틀 더 지켜보는 것이 어떻겠어요? 시신이 변색되는 걸 보면 더 분명해지잖아요."

"이렇게 날씨가 더운데 염을 미루다니. 시체가 다 썩고 나서 입관하도록 할 거야? 그런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염을 하고 한잔 하러 가세. 오늘은 내가 푸짐하게 한턱 낼 테니."

그렇지 않아도 시체를 다루는 일이 지겨운 검시관들은 하구의 판정을 그대로 따르기로 하였다. 썩어가며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시체를 하루 이틀 더 지켜보고 있는 것도 할 짓이 아니었다. 게다가 판정에 대한 최종 책임은 하구가 지게 되어 있으니 보조 검시관들로서는 그렇게 신경 곤두세울 일도 아니었다.

하구는 검시가 끝났음을 알리고 유족들로 하여금 염을 하여 입관을 하도록 허락하였다. 사람들이 시신을 관에 넣고 못을 박았다. 왕노파가 왔다갔다 하며 염을 돕다가 입관이 마무리되자 하구와 보조 검시관들에게 수고했다면서 거마비를 얼마 건넸다. 그 정도의 수고비야 어느 상가에 가서도 받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어 그들은 별 부담 없이 돈을 받았다.

하구가 돈을 소매에 넣으면서 왕노파에게 물었다.

"발인은 언제 한다고 하던가요? 며칠장으로 치르는가요?"

하구로서는 발인 날짜보다 장례 방식이 매장인지 화장인지 그것이 더 궁금하였다.

"발인은 사흘째 되는 날 하게 되고요. 그날 성 밖에서 바로 화장을 한답니다."

하구는 그러면 그렇지 하며 가만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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