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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국판 CSI 경연대회 "현장에 답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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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한림대에서 열린 ‘제3회 과학수사CSI 경진대회’에 참가한 대학생들이 살인 사건 현장에서 증거를 찾고 있다. 박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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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전 11시 강원도 춘천시 교동 의문장모텔 444호. CSI과학수사대라고 적힌 조끼를 입은 수사관 5명이 살인 사건이 발생한 객실에서 사진을 찍고 족적과 지문이 있는 곳에 번호판을 놓고 있다.

침대 위에는 20대 여성이 눈을 뜬 채 숨져 있고, 누군가 목을 조른 흔적과 울혈(혈액이 뭉치는 병적 상태)이 발견됐다. 바닥에는 핸드백과 지갑 등이 쏟아져 있고 현금은 모두 사라졌다.

현장에서 눈에 띄는 건 침실 통로와 시트 위의 미약한 족적, 침대 위에 있는 피 묻은 휴지가 전부다. 한 수사관은 “입구에서 발견된 족적의 길이는 245㎜인 것으로 볼 때 숨진 여성의 발자국 같다”며“침대 시트에 있는 발자국은 남성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30분간 현장에서 증거를 수집한 수사관들은 수집한 증거를 바탕으로 족적과 지문 분석에 들어갔다.

이번 사건과 연관된 용의자는 모두 5명. 숨진 여성과 결혼 문제로 다퉈온 남자친구, 둘 사이를 질투하는 남자친구의 친구(여성), 마스터키를 가진 모텔 주인, 모텔 절도 전과자(남성), 옆방 투숙객(여성) 등이다.

또 다른 수사관은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없어 면식범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며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남자친구와 모텔 주인이 주된 용의자”라고 말했다.

이날 모텔 살인사건 수사에 나선 이들은 한림대 법심리학연구소와 범죄과학연구소가 진행하는 ‘제3회 과학수사CSI 경진대회’에 참가한 대학생들이다.

사건도 1992년 서울의 한 모텔에서 발생한 ‘김 순경 살인 누명 사건’을 재구성한 것이다. 당시 사건과 모든 상황이 같았다. 하지만 학생들이 내린 결론은 실제 사건과 조금 달랐다.

실제 사건에서 김 순경은 여자 친구가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에 모텔에 같이 있었다는 이유로 구속돼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또 1년 남짓한 시간을 교도소에서 보내다 진범이 잡히면서 풀려났다. 김 순경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것은 동료 경찰의 회유와 협박이 허위진술로 이어지면서다.

참가자들은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경찰과 검찰·변호사·판사 등으로 역할을 나눠 모의법정을 진행했다.

대부분 1992년 이후에 태어나 김순경 사건에 대해 알지 못해서인지 경찰과 검찰팀 모두 진범을 찾는 데 실패했다. 또 실제 사건과 마찬가지로 남자친구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재판부를 담당한 영남대 경찰행정학과 ABLE팀은 경찰과 검찰팀이 제시한 증거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상은 이들 영남대팀에게 돌아갔다.

과학수사요원이 꿈인 영남대 경찰행정학과 김판석(20·2년)씨는 “사건 현장에서 작은 단서를 놓치는 게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알게 됐다”며 “오늘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사에 오점을 남기지 않는 경찰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번 대회 최우수상은 한림대 심리학과 크리미널마인드1팀과 국제학부 CIS FOR CSI팀이, 우수상은 아주대 심리학과 범인팀과 한림대 심리학과 크리미널마인드2팀이 차지했다.

한림대 국제학부 정재은(19·1년)양은 “현장에서 사라진 수표를 추적한 결과 절도범이 친구를 시켜 수표를 바꾼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기초적인 부분을 확인하지 않아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했다”고 말했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은 “당시 경찰은 사라진 수표와 현장에서 발견된 족적에 대한 분석을 제대로 하지 않아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놨다”며 “현장에서 발견된 대부분의 흔적이 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하더라도 또 다른 누군가의 흔적이 현장에 있다면 의문이 해소될 때까지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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