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집착하면 안 돼 … 한·중·일 안보협력 정상화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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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서울 중구 호텔신라에서 열린 ‘J 글로벌-채텀하우스 포럼 2015’의 제2세션(주제 ‘역사의 도전’)에서 토론자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미래지향적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왼쪽부터 이인호 전 주러시아 대사(사회), 소에야 요시히데 게이오대 교수, 김성한 고려대 교수, 존 닐슨-라이트 채텀하우스 아시아프로그램 담당, 스티브 창 노팅엄대 교수. [조문규 기자]

‘역사의 도전’이란 주제로 진행된 두 번째 세션에서 토론자들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미래지향적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공동의 가치를 발굴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신뢰를 쌓아갈 때 역사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다.

[J글로벌-채텀하우스 포럼 2015] 두 번째 세션 - 역사의 도전
“아베, 이웃도 자국민도 설득 못해
신뢰 부족 해결 위해 많은 대화를”
한·중·일 공동 교과서엔 시각차

 사회를 맡은 이인호 전 주러시아 대사는 “진정한 평화와 화해를 이루려면 궁극적으론 ‘과거의 유령’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이야기해달라”고 토론을 시작했다. 첨예한 주제답게 해법에 있어서는 미묘한 입장 차를 보였다.

 소에야 요시히데(添谷芳秀) 게이오(慶應)대 교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추진한 안보법안은 일본 사회를 분열시켰다”며 “역사에 대한 해석은 언제나 많은 분열을 야기하며 한·중·일 세 나라의 관계가 어려움을 겪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소에야 교수는 “역사를 가볍게 다뤄서도, 감정적으로 다뤄서도 안 된다”며 “과거사 문제와 안보·경제 등 호혜적 분야를 분리해 한쪽이 다른 쪽을 방해하지 않는 차원에서 똑같이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스티브 창 노팅엄대 교수는 “역사에 너무 집착하는 건 역사를 잘못 해석하는 것만큼 좋지 않다. 영국 역사학자 에드워드 H 카가 말했듯 역사는 과거와 현재·미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역사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앞서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창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년이 됐지만 동아시아에선 힘의 정치가 귀환하는 것 같다”며 “한·중·일 정상회의가 재개된 만큼 3자 안보협력을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존 닐슨-라이트 채텀하우스 아시아프로그램 담당은 아베 총리의 안보법안 추진에 대해 “전후 안보 문제에 대해 침묵하던 일본이 보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하지만 아베 정권은 일본 국민은 물론 주변 국가들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며 “신뢰의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론의 장에서 보다 많은 대화를 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한 고려대 교수는 “아베 총리가 취임한 2012년은 일본 경제가 중국 경제에 이미 뒤처지기 시작한 시점”이라며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역동적인 총리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일본을 ‘보통 국가’로 만들어 군사력을 키우고 국제 안보 무대에서 역할 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전략적 사고를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창 교수는 “서로 다른 가치를 갖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가치가 있지만 중국은 공유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역사와 관련한 명백한 증거 자료들을 모든 나라의 역사학자에게 제공하면 역사를 왜곡하려는 국가들이 압력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한·중·일 공동 역사 교과서 문제에 대해서는 더 큰 시각차가 드러났다. 닐슨-라이트 담당은 “세 나라가 공동의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 다른 국가 교실에 가서 학생들과 직접 토론하는 건 역사 문제 해결을 위한 실제적이고 유용한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한국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추진 중이기도 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 뭔가 결론이 내려지기 전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소에야 교수도 “한·중·일 3국 역사 교과서 가운데 일본 교과서가 가장 덜 민족주의적이라는 분석이 있다”며 “젊은 세대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에둘러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문제 해결에 대한 접근법도 달랐다. 김 교수는 “일본이 아시아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에야 교수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있는 국가로서 한국과 일본이 공통의 이해관계나 어젠다부터 공감대를 형성하고 다자체제 이니셔티브 건설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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