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은폐된 100억원 强盜 미스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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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직 무기거래상인 김영완씨가 1백억원 상당의 현금.채권.달러를 강탈당한 사실이 15개월 만에 뒤늦게 알려져 이래저래 세간의 관심거리다. 金씨는 현대 측이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건넸다고 주장하는 1백50억원어치의 양도성예금증서(CD)를 현금화한 인물로 추정된다.

그는 또 대북송금특검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직후 미국으로 출국해 전 정권 측이 미리 도피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고 있는 장본인이다. 그런 그가 빼앗긴 금액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데도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으니 궁금증이 가시질 않는다.

범인들 중 일부는 2개월 만에 검거돼 구속.기소.재판 과정을 다 거쳤지만 언론조차 몰랐던 것은 조직적인 은폐 기도가 있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범행 발생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경찰서는 金씨가 외부에 공개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변명하고 있으나 궁색하기 짝이 없다.

거액 강.절도사건이 일어나면 반드시 윗선에 보고하고, 범인을 한 명이라도 잡으면 보도자료 내기에 분주한 게 일선 경찰의 생리인데 꿀먹은 벙어리 행세한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경찰의 수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고위층이 개입하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다.

金씨는 朴전비서실장과 친밀한 사이고 전 정권 실세들과도 막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건이 발생한 지난해 3월 말이라면 국민의 정부가 한창 위세를 부릴 때가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에 음험한 권력이 개입된 것으로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경찰은 이제라도 지금까지 파악된 범행 발생 과정과 그동안 숨긴 이유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밝혀 1백억원을 둘러싼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 특히 범행에 가담한 金씨의 운전기사는 깨끗하지 않은 돈이라 신고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대북송금 특검은 金씨가 양도성예금증서를 돈세탁하면서 일부 채권으로 바꾼 정황을 포착했다고 하니 강탈당한 채권이 문제의 채권인지 등 1백억원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소홀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