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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교실서 남녀 둘만 얘기 땐 진술서 … 1년에 세 번 손잡다 걸리면 퇴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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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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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배민호]

야간 자율학습이 끝난 밤 11시 이모(17)양과 김모(17)군이 빈 교실에서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별안간 문이 열리더니 선생님이 들어와 두 학생에게 학번과 이름을 대라고 한 후 학생부로 데려가 진술서를 작성하게 한다. 선생님이 던진 딱 한마디.

[세상 속으로] 남녀공학 기숙사 고교의 학칙
기숙사 고교 81% 이성교제 제재
학교 밖 만남도 막아 3번 적발 땐 퇴출
생일·기념일에 선물해도 지도 대상

 “너희는 대(大)선도위원회 감이야.”

 이는 경기도의 Y고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모습이다. 이 학교 학생부 교사 이모(31)씨는 커플 잡기에 바쁘다. 순찰시간은 대부분 야자시간과 야자가 끝난 직후인 밤 11시~11시40분. Y고 학칙에 의하면 ‘밀폐된 공간에 남녀 둘’이 있으면 안 된다. 또한 ‘교육적 활동을 제외한 이성·동성 간의 스킨십’ 자체를 금지한다. 이를 어기면 일단 진술서를 작성한다. 폐쇄회로TV(CCTV) 검증 결과 남녀 사이에 스킨십이 있었다고 밝혀지면 부모 호출, 등교 정지, 사회봉사, 해당 학기 수상 금지 등의 중징계를 받는다. 최고 징계는 퇴학이다. 이씨는 “기숙학교라 교칙이 더 엄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감정이 더욱 쉽게 생겨나고 충동적으로 행동할 때가 많으니까 조심해야 하는 거죠. 이렇게라도 잡지 않으면 애정행각의 끝을 보일 수 있을걸요.”

 Y고가 아니어도 실제로 기숙사 고교들의 이성교제 관련 규제는 전반적으로 엄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 TONG이 전국의 남녀공학 기숙사 고교 151곳의 학칙을 각 학교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아 검토한 결과 122개교(80.8%)가 이성교제 관련 제재 조항을 두고 있었다. 최고 징계가 퇴학인 학교는 28개(18.5%)였다.

 경북 B고는 방과 후 이성교제를 하다 교사 및 지역사회 주민에게 적발된 학생에게 기숙사 벌점을 부과한다. 학교 밖 이성교제도 금지하는 셈이다. 세 번 적발되면 기숙사에서 쫓겨난다. 부산의 P고에선 ‘남녀 학생이 의도적으로 만나 등·하교하는 행위’ ‘생일 및 기념일에 선물을 하는 행위’ 등 이성교제로 보일 법한 행동을 할 경우 ‘지도 대상’이 된다. 경남 K고는 밀폐된 공간에 둘이 있거나 손잡고 팔짱 끼는 등의 접촉을 하는 경우 1회 적발 시 벌점 30점을 부과한다. 30점이면 ‘비행을 저질러 경찰서 등에 통보’될 때 받는 벌점과 같고 ‘시험 중 부정행위’(20점), ‘도박’(10점)보다 높은 수위다. 1년간 누계 80점 이상이면 퇴학이다. 손잡은 게 세 번 이상 걸리면 퇴학당할 수 있는 셈이다. 상점으로 벌점 30점을 상쇄하려면 ‘아침 일찍 등교해 교무실 청소하기’ ‘한자 300자 쓰기’ 등의 3점짜리 선행 10건을 이행해야 한다.

 서울 H고는 아예 학칙에 ‘교내외 애정행각에 대한 조치’를 별표로 두고 징계 대상 스킨십 행위를 구체적으로 예시하고 있다. 가령 ‘어깨나 허리 감싸 안기’ ‘무릎 위에 앉거나 무릎 등의 신체를 베고 눕기’ ‘포옹 또는 뒤에서 껴안는 등의 신체적 접촉행위’ 등은 최대 10시간 이내 교사 및 전문가 상담과 학부모 소환 대상이다. ‘입맞춤’ ‘가슴·엉덩이 등 특정 신체부위 스킨십’은 20시간 이내의 상담, ‘성관계 및 유사성행위’는 봉사 10일 및 최대 30시간 이내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 공연·음란성이 있다고 판단한 경우엔 최대 전학 권고나 퇴학 조치까지 가능하다.

 이들 학교는 대부분 학칙 중 ‘퇴폐’ 혹은 ‘면학’ 항목에 ‘불건전한 이성교제’를 포함시켜놨다. ‘불건전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기에 이성교제 자체를 금지하는 건 아니다. 다만 ‘불건전한 이성교제’의 정의가 모호해 학생들의 불만이 나오곤 한다. 한편으론 요즘 10대의 이성교제 수위가 워낙 높아 학교들이 강하게 제재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도 있다.

 자녀를 기숙학교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 안모(41·여)씨는 “당연히 기숙학교에 보내는 거니까 아이가 그곳에서 부모가 없어도 잘할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부모의 눈길을 피해 있어 하루 종일 공부도 안 하고 연애만 해도 전혀 알 수 없으니 학교에서 잘 관리해 주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애나 하라고 비싼 돈 들여 기숙학교에 보낸 건 아니지만 혹시나 우리 아이가 걸렸다가 과도한 징계를 받으면 어떡하나 걱정도 된다”며 지나친 징계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이성교제를 규제하는 학칙이 있다고 해서 연애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동성·이성 간 스킨십을 금지하고 있는 Y고 2학년 한 학급의 이성교제 비율을 조사해본 결과 재적인원 34명 중 10명이 이성교제를 하고 있으며 그중 8명은 교내 커플인 것으로 나타났다. 1학년 때는 커플이 전교에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연스레 커플의 비율도 늘어난다는 것이 학생들의 증언이다. 이 학교 재학생 김모(17)양은 “교칙이 너무 엄격한 것이 역효과를 불러일으켜 학생들은 CCTV와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더 은밀한 곳에서 사랑을 속삭인다. 학칙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과도한 애정행각만 단속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는 이러한 학칙에 대해 “학생의 교외 행동까지 규제하는 등 징계 정도가 과하다. 자기결정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으며 인권위 조사 대상”이라고 말했다. 실제 교문 밖에서 스킨십을 했다가 징계받은 학생이 ‘민법상 혼인이 가능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성교제를 제한하는 것은 자기결정권 침해’라며 2013년 인권위에 진정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제보한 사실이 드러나면 자칫 학교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염려해 조사가 시작되기 전 진정을 취하했다고 한다.

 이성교제 관련 학칙이 과도해도 이에 대한 개정은 쉽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4년 발표한 ‘학생 미혼모 학습권 보장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부산·광주·전북·경북 등 5개 지역 중학교 55.6%, 고등학교 58.8%가 학칙에 이성교제 관련 처벌 조항이 있다. 또 교육부가 2013년 ‘학칙개정권고안’을 일선 학교에 보냈으나 학칙 제·개정은 학교장 재량이기에 상당수 학교가 따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학칙으로 학생들이 건전한 이성교제를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학교도 있다. 전북 S고는 학생생활규정 제12조에 ‘양성평등 이성교제’ 항목을 두고 ‘부모님께 반드시 알리고 쾌락이나 성적인 면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주의하고 건전한 이성교제가 이뤄지도록 노력한다’고 권고한다. 전북 J고는 ‘일방적·강압적 이성교제(스토킹)에 한해’서만 특별교육을 실시한다. 서울 E고는 2013년 초까지만 해도 이성교제와 관련한 최고 징계가 ‘퇴학’이었다. 하지만 ‘임신, 출산, 이성교제 등을 이유로 퇴학, 전학, 자퇴 권고 등을 하지 않는다’는 그해 6월 교육부의 권고에 따라 학칙을 수정했다.

 경기도 H고에 재학 중인 김모(17)군은 “이성교제 관련 규정이 한 줄 있기는 하나 단속하지는 않는다. 선생님이 연애상담을 해줄 정도로 개방적이고 자유로워 ‘애정촌’이라 불리지만 불건전한 연애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서울의 A외고에 재학 중인 박모(16)군도 “교내 커플이 많아 학생들 사이에서 외고가 아니라 ‘애(愛)고’로 통한다”고 말했다.

이경희·박성조 기자, 성슬기 인턴기자 dungle@joongang.co.kr

[S BOX] 길거리 방황하면 학칙 위반, 치마 짧으면 급식 제한 규정도

“여름에 날씨가 조금 쌀쌀해서 겉옷을 입었다가 벌점을 받았어요.”(충북 G중학교 제보자)

 “흡연 혹은 담배나 라이터를 갖고 있다가 6번 걸리면 퇴학이에요.”(부산 C고교 제보자)

 학생 인권 관련 단체들의 모임인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는 ‘불량 학칙 공모전’을 열고 인권 침해 소지가 있는 학칙 사례를 수집했다. 지난달 9일 이후 한 달 만에 90건이 모였다. 이 단체가 공개한 제보 사례에 따르면 대구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목적 없이 길거리를 다니는 것’이 학칙 위반이다. 정치활동에 참여하면 징계하는 학교도 여럿이다. 대전의 B중학교는 ‘벌점 항목에 해당하지 않는 벌점 행동’에 벌점을 준다는 포괄적인 규정이 있다. 본지가 조사한 학칙에도 ‘승강기 정원을 넘어 탑승’하면 벌점을 준다거나(서울 H고), ‘국기와 조국에 대해 불손할 경우 최고 징계가 퇴학’(강원도 M고)이라는 등의 내용이 있었다.

 학칙에 명시된 건 아니지만 학교 방침으로 SNS상에서 학교를 비판하면 처벌한다거나 ‘다른 수단으로는 교정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라는 조건으로 체벌을 허용하는 학교, 여학생의 치마가 짧으면 급식을 제한하는 학교, 고3은 점심시간 운동을 금지한다는 학교에 대한 제보도 있었다. 성적에 따른 차별도 있었다. 성적순으로 독서실을 배정하면서 시설 차이를 두거나 성적순으로 기숙사를 배정해 거리 때문에 통학이 사실상 어려운 학생이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한 사례도 제보됐다.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의 활동가 쥬리(활동명)는 “명문화된 학칙 외에도 학교마다 학년이나 학급 단위로 적용하는 규칙들이 있다. 애매모호한 기준을 임의로 해석하면서 학생들에게 상식 밖의 규칙을 따르라고 강요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 이 기사 작성에는 익명의 TONG청소년기자들이 참여했습니다. TONG(teen on generation)은 중앙일보가 전국 600여 청소년기자와 함께 만드는 온라인 뉴스 채널입니다. TONG(http://tong.joins.com)에서 더 다양한 학칙 관련 기사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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