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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에 둔감한 대한민국, 그리고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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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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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욱
정치국제부문 차장

얼마 전 주한 일본 대사관 직원들, 일본 신문의 서울 특파원들과 점심식사를 했다. 그들에게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면 무엇이 가장 다른가’를 묻자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들답게 똑 부러지는 대답이 안 나왔다. 그때 특파원 한 명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일본이 좀 조용한 걸 빼면 비슷해요”라면서다. 중국인들을 “시끄럽다”고 낮춰보는 일부 한국인들에겐 충격이겠지만 일본인들 관점에선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음에 둔감하다’는 점에서 한국인이나 중국인이나 ‘거기서 거기’, 도긴개긴이다. 우리가 무신경하게 지나치거나 불쾌하지만 참고 사는 생활 속 소음이 그들에겐 거의 고문(拷問)이기 때문이다.

 손님이 있거나 말거나 트로트 음악이 나오는 라디오 불륨을 끝까지 올리는 일부 택시 기사님들, 지하철 안에서 휴대전화를 부여잡고 집안 내 시시콜콜한 대소사를 승객들에게 강제 홍보하는 이들(가끔씩은 스피커폰 모드로 만행을 저지르는 사람들까지 있다), 남이야 불쾌하든 말든 등산로·산책로에서 ‘휴대용 스피커’ ‘효도 mp3 라디오’로 음악감상 취미생활을 만끽하는 사람들…. 이들은 이제 우리 생활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돼 버렸다.

 최근엔 강원도의 한 국립공원에서도 황당한 일을 겪었다. 국보급 유명 사찰로 향하는, 잘 꾸며진 나무숲 길을 걷고 있었다.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머릿속의 근심을 비우는 ‘치유와 사색의 길’에서까지 복병을 만날 줄이야. 숲길 한가운데에서 기타를 들고 모금 활동에 나선 스님의 노랫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쩌렁쩌렁 울렸고, 필자는 기겁을 하며 발길을 재촉했다. 모두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나만 감동받고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배려 없는 문화가 만들어낸 풍경들이다.

 소음 둔감증을 겪는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현장이 요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시끄러운 여의도 국회다.

 여야는 토론이나 대화 없이 자기주장만 쏟아내고 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아침 회의 때마다 뱉어내는 발언과 담론의 수준이 높을 리 없다. 막내 기자들이 노트북 컴퓨터로 받아 적는 발언의 분량은 매일 1만 자에 가깝다. 하지만 보좌관들이 써준 원고를 그저 읽어 내려가고, 옆사람보다 한마디라도 더 길게 발언하려고만 드니 그 1만 자 중 귀담아 들을 얘기는 한 문장도 건지기 어렵다. 심지어 40분 동안 모두발언만 하고 회의를 끝내는 경우도 있다. ‘아침 회의를 통한 어젠다 설정과 메시지 홍보’가 수십 년째 이어져온 한국 정당의 특징이라지만 공당의 지도부가 아침마다 1만 자의 말을 쏟아내는 나라가 이 세상에 몇 개나 있을까 싶다. 지난 2월 대표에 취임한 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도 ‘의미 없는 소음’만 양산하는 구태에 칼을 대려 했다. 하지만 “모두발언을 하고 싶어 내 돈 쓰면서 최고위원에 출마했는데 무슨 소리냐”는 일부의 반발에 결국 뜻을 접고 말았다. 국회에서, 길거리에서, 택시 안에서, 등산로에서 우리는 소음에 너무 둔감하고 관대하다.

서승욱 정치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