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딴살림 차린 남편이 이혼 청구 … 법원 “이혼 허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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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5년간 다른 여성과 살림을 차린 남편이 아내를 상대로 낸 이혼 청구가 항소심에서 받아들여졌다. 이는 지난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유책(有責)주의’의 예외적 기준을 제시한 이후 첫 판결이다.

별거 상태 … 18년간 연락도 안 해
항소심, 유책주의 예외 첫 인정

 의사인 남편 A씨(75)는 의사 집안 딸인 아내 B씨(65)와 1970년 결혼했다. 3형제를 낳았지만 두 사람은 잦은 다툼 끝에 80년 협의이혼했다. 3년 뒤 재결합했으나 잦은 다툼 끝에 A씨가 집을 나갔다. A씨는 두 명의 여성과 2년여씩 동거한 데 이어 90년부터는 또 다른 여성 C씨와 살림을 차렸고 아들도 낳았다. 그는 B씨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냈으나 법원은 ‘유책주의’ 원칙을 들어 청구를 기각했다. 그때부터 A씨는 사실상 중혼 상태로 지냈다. B씨와 만난 건 97년 장남 결혼식 때뿐으로 서로 연락도 하지 않았다. A씨는 2013년 법원에 두 번째 이혼 소송을 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항소1부(수석부장 민유숙)는 A씨에게 패소 판결을 내린 1심을 깨고 “부부로서의 혼인생활이 이미 파탄에 이른 만큼 A씨와 B씨는 이혼하라”고 판결했다고 1일 밝혔다. 재판부가 예외적으로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한 건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재판부는 ▶25년간 별거하면서 혼인의 실체가 완전히 사라졌고 ▶남편의 혼인파탄 책임도 세월이 흘러 상당히 약화됐으며 ▶남편이 별거기간 자녀들에게 수억원의 경제적 지원을 했고, 아내도 경제적 여유가 있어 축출이혼 염려가 없는 점 등을 제시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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