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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2억여원 버킨 백 모방 5만원짜리 ‘페이크 백’ 내놔 … 명품 ‘카피캣’ 소송 잇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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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 매카트니의 파라벨라 백(왼쪽)과 스티브 매든의 비토탈리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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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44)는 최근 뉴욕의 유명 신발 디자이너 스티브 매든(57)을 상대로 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자신의 패션 브랜드 ‘스텔라 매카트니’의 대표 상품 파라벨라 백의 디자인을 스티브 매든이 그대로 베낀 비토탈리 백을 시장에 출시했기 때문이다. 2009년에 처음 출시된 파라벨라 백은 동물 애호가인 매카트니가 동물 가죽이 아닌 패브릭 소재로 만들었지만 가격은 1200달러(약 137만원)를 호가한다. 그러나 스티브 매든의 비토탈리 백은 108달러(약 12만원)로 파라벨라 백의 10분의 1 수준이다. 매카트니는 소장에서 “눈으로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똑같이 베껴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내 명성도 치명타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디자인 베끼기 전쟁

 경제전문지 포춘지는 최근 들어 패션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디자인 카피’(Design knockoff) 소송전에 대해 자세히 보도했다. 수천 달러에서 수만 달러를 호가하는 명품 브랜드의 제품을 대중적인 패션 브랜드에서 베껴서 출시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들 ‘디자인 카피’ 제품은 외관상 오리지널 제품과 쉽게 분간할 수 없다. 디자이너들은 “그간 암묵적으로 허용되어 온 ‘디자인 카피’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며 줄지어 소송전을 선포했다.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도 2~3년을 기다려야 살 수 있다는 에르메스의 버킨 백은 ‘디자인 카피’ 단골 손님이다. 뉴욕 패션 브랜드 써스데이 프라이데이는 버킨 백의 디자인을 천 소재 가방에 프린트한 ‘페이크 백’으로 인기를 끌었다. 최고 2억3000만원에 이르는 버킨 백이지만 ‘페이크 백’은 45달러(5만원)다. ‘페이크 백’에 대한 소송은 한국에서 먼저 제기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7월 “멀리서 보면 에르메스 제품과 구분하기 어렵다”며 “페이크 백 제조·판매 등을 중단하라”고 에르메스의 손을 들어줬다. 샤넬의 수석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82)도 지난해 스포츠 브랜드 뉴발란스에 의해 피소됐다. “라거펠트가 뉴발란스를 상징하는 ‘990’ 시리즈 운동화의 디자인을 도용해 제품을 출시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새빨간 밑창의 하이힐로 유명한 크리스찬 루부탱은 2011년 입생로랑에서 출시한 빨간 바닥 신발을 문제 삼으며 소송을 제기했다. 2008년 미국 특허청으로부터 빨간 바닥에 대한 상표권을 획득했던 루부탱은 승소를 확신했다. 법원은 1심에서 입생로랑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패션에서 장식적이고 미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빨간색을 루부탱만의 밑창으로 쓸 권리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2심에서는 반대로 “1심의 판단은 미학적 기능에 대해 부적절하게 이해한 것”이라며 “루부탱의 새빨간 밑창은 특허권 보호 대상”이라고 판결했다. 루부탱은 지난봄 같은 똑같은 내용의 소송을 네덜란드 브랜드 밴 하렌을 상대로 유럽연합(EU) 법원에 제기한 상태다.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변호사를 고용해 카피캣(copycats·흉내쟁이)을 찾아내고 적극적으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디자인 보호 관련 법률은 존재하지만 디자인 도용의 정의와 그 범위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규정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문제다. 오리지널 제품과 ‘디자인 카피’ 제품 중 승자가 매번 제각각인 이유다. 포춘은 “유럽·일본을 제외하고 대다수 국가에서 법 규정조차 애매하다”고 지적한다. 디자인 카피가 활발해지는 데는 인터넷의 발달도 한몫한다. 패션쇼와 패션 잡지 화보를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디자인 카피 제품들이 시장에 출시되는 데는 불과 며칠밖에 걸리지 않는다. 디자인 회전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포에버21이나 H&M 같은 제조·유통 일괄형(SPA) 브랜드는 하루에도 수십 개씩의 신제품을 내놓을 만큼 제품 회전율이 빠르기 때문에 유행하는 아이템을 속속 베껴서 출시하고 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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