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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엮어보기] 수류탄 몸으로 감싼 영웅 이름을 구축함에 붙이는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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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건조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라파엘 페랄타호. [AP=뉴시스]

오는 30일(현지시간) 미국 해군은 새로운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의 명명식을 엽니다. 알레이버크급은 약 8000t급의 구축함으로 300명의 승무원이 탑승하는 미군의 주력 이지스 구축함입니다. 이 배의 이름은 라파엘 페랄타함. 2004년 12월 이라크전쟁에서 사망한 미군 참전 용사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페랄타 하사는 당시 이라크 팔루자에서 전투를 벌이던 중 적군이 던진 수류탄을 몸으로 감싸 동료를 구하고 전사했습니다. 그는 순직 후 해군십자훈장을 받았지만 최고무공훈장 신청이 세 차례 거부당하며 ‘가짜 영웅담’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페랄타가 아군끼리 오인 사격을 벌이다가 사망했고 동료들이 이를 은폐하기 위해 무용담을 꾸며냈다는 인터뷰를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진실은 알 수 없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요.

라파엘 페랄타함에 앞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전에 참전한 용사의 이름을 따서 구축함의 이름이 지어진 적이 있습니다. 2010년 취역한 알레이버크급 구축함 제이슨 던햄함과 마이클 머피함입니다. 제이슨 던햄 상병은 2004년 4월 이라크 후세이바 인근 지역에서 전투 지원을 나가던 중 동료에게 떨어진 수류탄을 몸으로 막아 전우들을 구하고 전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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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머피 대위의 실화를 다룬 `론서바이버`의 포스터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의 대원이던 마이클 머피 대위는 2005년 아프가니스탄 레드윙 작전에 투입됐다 전사했죠. 당시 머피 대위와 3명의 네이비실 대원은 100여명의 탈레반과 전투를 벌였고 머피 대위 등 3명이 사망했습니다. 탈레반은 당시 90여명의 전사자를 냈다고 합니다. 당시 이 대원을 구출하기 위해 투입됐던 시누크 헬기가 격추되어 한국계 제임스 서(한국명 서정갑) 병장 등 8명의 네이비실 대원도 전사했습니다. 이 스토리는 '론서바이버'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논란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미군 참전 용사를 기리는 방법은 주목할 만 합니다. 전투 중 전사를 했지만 함정으로 부활해 다시금 전우들과 함께 하는 것이니까요. 대부분 자신을 희생해 남을 구한 영웅들입니다.

한국의 경우를 볼까요. 지난 8월 한국의 차기 6번째 호위함 광주함이 진수됐습니다. 이에 앞서 3월 진수된 최신예 214급 잠수함은 유관순 함이었죠. 군함의 경우 만재 톤수 크기에 따라 500t 이상급인 함(艦)과 500t 이하인 정(艇)으로 분류됩니다.

우리 해군의 경우 구축함은 역사적으로 추앙 받는 인물의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다. 2002년 진수된 4000t급 구축함 충무공 이순신함이 대표적이죠. 세종대왕, 율곡 이이, 서애 류성룡 등의 이름이 한국형 이지스 구축함에 붙어 있습니다. 구축함을 뒷받침하는 호위함의 경우 지명을 따서 짓고 있습니다. 울산함·광주함 같은 이름이 붙죠. 서해에 침몰해 46명 장병의 목숨을 앗아간 1200t급 천안함은 초계함이었습니다. 이보다 작은 고속정은 새 이름을 땁니다. ‘참수리’, ‘검독수리’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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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유도탄고속함 윤영하함. [뉴시스]

우리나라에도 전사 장병의 이름을 따 이름을 짓는 경우가 있습니다. 유도탄고속함(PKG)인데 참수리급 고속정의 후속 전력입니다. 400t급이지만 우리 해군은 일단 함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PKG에는 해군 전투에서 귀감이 되는 인물 이름을 붙였는데 1번함이 제2연평해전에서 순직한 윤영하 소령의 이름을 딴 윤영하함입니다. 함께 전사한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의 이름도 모두 PKG의 이름으로 명명됐습니다.

한국전쟁에서 활약한 현시학 제독, 베트남 전쟁에서 활약한 지덕칠 중사 등의 이름도 PKG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고속정급이 아닌, 주력 함정에 역사의 영웅뿐 아니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들의 이름을 붙여줬으면 합니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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