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세청·지자체 중복 세무조사 문제 없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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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경북 영천시의 한 자동차부품회사는 1년 만에 세무조사를 두 번 받았다. 지난해 10월 국세청에서 받았는데, 지난주 경북도가 또 조사를 나왔다. 이걸로 다가 아니다. 영천시도 내년 초 세무조사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A사 관계자는 “1년여 만에 세 차례 세무조사를 받게 될 판”이라고 난감해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건 2013년 지방세법을 개정하면서 지방자치단체에도 세무조사권을 넘겨줬기 때문이다. 원래 법인·소득세는 중앙정부가 거둬 10%를 지방에 떼줬는데 지방세수를 강화한다며 징수권을 아예 지자체로 넘긴 것이다. 그때 세무조사권도 같이 넘어갔다. 그러자 기업들이 크게 당혹했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수원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사업장은 수원·구미·기흥·화성·온양·광주 등 6곳에 흩어져 있다. 많게는 7곳에서 동시에 세무조사를 받을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재계는 연초부터 “전국 226개 시·군·구 지자체가 동시다발적으로 세무조사에 나서면 여러 지자체에 사업장을 둔 기업은 경영 차질이 불가피하다”며 관련법 개정을 호소했다.

 정부는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지난 4월 뒤늦게 세무조사권을 국세청으로 단일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재개정하기로 했다. 7월에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이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8월 정부의 세법 개정안에도 같은 내용이 포함됐다. 그런데 문제는 법 개정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내년 총선이 다가오면서 지자체들이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유정복 인천시장이 앞장서 “세무조사를 국세청에만 일임하는 것은 지자체에 세무권을 준 취지와 어긋난다”며 “법 개정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세무조사 기간은 짧을수록, 납세비용은 적을수록 좋다. 올해 법 개정이 안 돼 내년 이후 세무조사가 쏟아지면 기업들은 일 년 내내 세무조사를 받느라 아예 정상적 기업활동을 포기해야 할 판이다. 이래서야 경제를 살리자는 것인지 죽이자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세무조사권은 국세청으로 일원화하되 재계의 건의대로 법인세 결정·경정 청구권을 지자체에 주는 식으로 서둘러 교통정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