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언제까지 스크린 쿼터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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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스크린 쿼터제가 한.미 투자협정과 관련해 다시 논쟁거리로 등장하였다. 스크린 쿼터제란 원래 모든 극장이 연간 1백46일 (3백65일의 40%) 이상 국산 영화를 상영해야 한다는 제도다. 이 규정은 스크린 쿼터 감시단의 엄격한 감시를 받고 있으며, 위반한 극장에는 일회당 5백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 투자협정과 맞물린 건 불행

논쟁은 한.미 투자협정과 관련해 미국 측이 스크린 쿼터제의 철폐 또는 축소를 요구함으로써 촉발됐다. 재경부의 입장은 투자협정으로 예상되는 수출촉진이나 투자유치 효과를 강조한다. 스크린쿼터문화연대의 입장은 종합민족예술이라는 문화적 가치를 상업적 가치와 비교하는 자체를 몰상식하다고 비난한다.

나는 문화적 가치를 상업적 가치와 비교할 수 없다는 연대 측의 주장에 적극 동의한다. 이 점에서 한.미 투자협정과 관련해 스크린 쿼터제를 논의하게 된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렇지만, 영화라는 문화적 가치는 문학.음악.미술.연극 등 다른 문화적 가치와 비교될 수 있다. 더욱이 쿼터제가 영화 자체의 발전을 위해 어떤 영화인에게 도움을 주고, 어떤 영화인에게는 오히려 피해를 주고 있는가도 분석될 수 있다.

실제에 있어서 스크린 쿼터제를 둘러싼 논쟁은 5년 여 전에도 있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후보는 국산영화의 시장점유율이 40%가 넘을 때까지 쿼터제를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한.미 투자협정이 연기되고, 쿼터제는 공약대로 유지됐다.

지금의 상황은 5년여 전의 상황과 유사하다. 물론 내적인 상황은 변화했다. 연대 측에 유리한 상황변화라면 정치적인 측면이다.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 장관을 비롯해 적지않은 영화인들이 실세를 차지하고 있다.

연대 측에 불리한 상황변화라면 경제적인 측면이다. 시장점유율은 지지난해에 이어 지난해 공약된 40%를 훨씬 뛰어넘었다. 멀티플렉스 극장의 확장, 영화자본의 조달패턴, 배급시장이 현대화한 것도 중요한 변화다.

무엇보다 연대 측으로서 부담스러운 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개혁과 기득권의 포기를 주장하면서 자신은 상황의 변화에 순응하지 않고 기득권을 지키려 한다는 따가운 눈초리다.

원래 스크린 쿼터제는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 민주적 사고를 통제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1963년 수입추천제로 도입된 국산영화 장려정책은 66년 90일의 의무상영 일수라는 직접규제로 강화되고, 한때 30일로 감축됐다가 유신체제와 함께 1백21일로 대폭 증가하고 전두환 정권 초기에 1백65일로 더욱 강화됐다가 85년 1백46일로 다소 감축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군사정권의 필요에 의해 도입된 것이라도 내 이익에 부합하면 지켜야 한다는 것은 명분을 얻기 어렵게 한다. 40년이면 유치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도 시효가 지날 만하다. 소비자의 잘못된 취향을 국가가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도 주문형 비디오(VOD)시대에 걸맞지 않는다.

*** 외화방영권 거래 등 검토해야

진정으로 국산영화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상황에 걸맞은 보다 효율적인 방법이 없는지 재점검해야 한다. 공해방지를 위한 매연권의 거래는 주요한 시사를 준다.

아황산가스의 배출을 공장별로 규제하는 대신 기준 이하로 배출하는 업체가 매연권을 다른 업체에 팔도록 허용할 수 있다. 업체별로 매연 감축의 비용이 다르므로 사회는 가장 싼 방법으로 매연을 바람직한 수준으로 감축하도록 유도된다.

마찬가지로, 국산영화에 특화하는 극장이 다른 극장에 외화상영권을 팔도록 허용할 수 있다. 1백46일의 기존 쿼터를 인정하되, 그 절반의 한도 내에서 거래를 지역별로 허용하면 충격을 피할 수도 있다.

멀티플렉스 극장의 경우, 내부거래를 허용하면 된다. 나아가 외화방영권을 영화진흥협회에서 판매하고 그 판매대금으로 종합영화박물관의 설립이나 예술영화의 제작을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조건 기득권을 지키려고 투쟁하기 보다 기존의 상식을 재검토하는 것, 그래서 비합리적인 것을 바로잡는 것이 개혁의 정신이 아니던가?

張世珍(인하대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