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커버스토리] 오색 짙어지니, 사색 깊어지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기사 이미지

설악산의 가을. 서북능선에서 본 남설악은 단풍으로 곱디고왔다. 설악산국립공원에 따르면 이달 말까지 단풍을 볼 수 있다. [사진 임현동 기자]

가을이 깊다. 울긋불긋한 기운이 온 강산에 드리운다. 이 계절, 단풍으로 이름난 산은 차라리 병을 앓는다. 계절병이다. 해마다 겪는 계절병이라지만, 이번 가을 설악산(1708m)의 증세는 유난하다. 단풍 때문만이 아니다. 전혀 생뚱한 문제가 불거졌다. 이른바 설악산 케이블카 논란. 산세 유구하고, 단풍도 변함이 없는데 설악산 단풍을 바라보는 심사는 전과 같지 않다.

설악산 단풍 산행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은 8월 28일 국립공원위원회로부터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일부 인허가 절차만 처리하면 설악산에 두 번째 케이블카가 들어선다. 계획대로라면 2년 뒤부터 케이블카가 운행된다.

현재 국내 관광용 케이블카는 모두 21곳을 헤아린다. 그 가운데 국립공원은 설악산·내장산·덕유산 등 세 곳에 불과하다. 국립공원 케이블카 사업 신청은 줄을 이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그만큼 국립공원 개발은 간단치 않은 문제였다.

설악산만 해도 그렇다. 설악산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이고,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이며, 백두대간 보호구역이자, 자체로 천연기념물이다. 그리고 국립공원이다. 국립공원은 자연공원의 보호와 관리를 위해 국가가 지정한 장소다. 종 다양성이 풍부한 자연 생태지역으로서 기능이 가장 우선된다. 국립공원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기사 이미지

끝청 아래 봉우리.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상부 정류장이 놓일 자리다. [사진 임현동 기자]

환경단체는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들어서면 환경이 크게 변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고산대(해발 1500∼2000m 지대) 식생을 파괴하고, 산양·삵 등 멸종위기종 야생동물을 쫓아낼 것이라고 우려한다. 반면에 케이블카 사업을 추진하는 강원도 양양군은 케이블카가 되레 탐방로 훼손을 막는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케이블카는 노약자·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라고도 한다. 이른바 ‘산의 민주화’ 주장이다.

한쪽에서는 “국토의 1%도 안 되는 국립공원마저 뒤엎을 필요가 있느냐”고 외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케이블카 사업 면적은 설악산국립공원의 1%도 안 된다”며 맞서는 형국이다.

설악산 케이블카 노선은 3.5㎞ 길이다. 설악산 자락 양양군 오색탐방로 입구에서 끝청(1610m) 130m 아랫부분까지 이어진다. 양양군은 남은 인허가 절차를 마치고 내년 6월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계획에 따르면 기존 탐방로와 거의 겹치지 않는다.

그러나 나무보다 훨씬 높은 기둥이 기슭을 따라 줄지어 서 있고, 그 위로 케이블카 53기가 오르내리는 설악산은 어딘지 낯설다. 끝청에서 내려다보는 남설악 풍경도, 오색약수에서 올려다보는 서북능선 풍경도 예전과 같지 않을 터이다.

끝청 정상에서 만난 탐방객 황호철씨는 “여러 번 찾았던 봉우리인데, 케이블카가 놓인다니 묘하다. 지금 끝청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서 기념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말했다.

week&도 다르지 않았다. 케이블카 사업이 승인된 지난 8월부터 끝청에 오르기로 작정하고, 단풍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 산행 루트는 한계령∼끝청∼중청∼대청∼오색약수로 잡았다. 이른바 서북능선∼오색 1박2일 코스다.

기상청에 따르면 설악산은 지난 18일 단풍 절정기에 들었다. 단풍 절정기라는 표현은 단풍이 산의 80% 이상을 덮을 때부터 허락된다. 설악산 국립공원에 따르면 이달 말에도 단풍 구경이 가능하단다. 올가을은 단풍 내려앉은 끝청∼오색 구간의 맨 얼굴을 마주하는 마지막 계절이다.

[관련 기사] │ 케이블카 놓일 끝청~오색 둘러보니
[커버스토리] 알록달록 숲은 변함없어도, 내년 가을엔 좀 낯설지 않을까

글=백종현 기자 jam1979@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