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법원 "기름 잘못 넣는 혼유사고, 미리 설명 안한 운전자도 일부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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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자가 연료 종류를 미리 밝히지 않았고 제대로 된 연료가 주유되는지 확인하지 않은 상황에서 주유소 직원이 실수로 잘못된 연료를 넣어 혼유 사고가 났을 경우 운전자의 과실도 일부 인정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동부지법 민사9단독 이준영 판사는 서울 강동구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신모씨가 운전자 박모씨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 확인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21일 밝혔다,

박씨의 아들인 A씨는 지난해 9월 21일 박씨 소유의 BMW 차량을 운전하다 서울 강동구에 있는 신씨 주유소에 들러 기름 3만원어치를 주유해 달라고 했다. A씨는 차량이 휘발유 차인지, 경유 차인지는 따로 얘기하지 않았다.

이에 직원은 휘발유를 주유하기 시작했고, 이를 확인한 A씨 아들이 “기름을 잘 못 넣고 있다”고 해 주유를 급히 멈췄다. 그러나 이미 1ℓ가량 휘발유가 주유돼 혼유 사고가 일어난 뒤였다.

차주인 박씨는 이 사고로 차량을 서비스센터에 맡겨 세척작업을 진행했고, 약 한달간 렌터카를 빌려 타야 했다. 이후 박씨는 신씨를 상대로 차량 수리비, 렌터카 비용, 서비스센터 보관료 등 188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박씨는 아들 A씨가 연료 종류를 미리 알려주진 않았지만 경유 주유기 앞에 차를 세웠고, 차량 연료 주입구 덮개를 열면 경유 차량임을 알리는 표시가 부착돼 있어 주유소 직원이 주의의무를 위반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신씨는 이에 대해 맞소송을 냈다. 신씨는 해당 차종이 같은 종류의 경유·휘발유 차량이 출시돼 외관상 이를 구분하기 어렵고, A씨가 경유 주유기가 아닌 휘발유 주유기 앞에 차량을 세웠다고 주장했다. 또 직원이 사고 당시 “휘발유 가득이오”라고 외치며 주유를 시작했으므로 주의를 기울였다면 직원이 연료 종류를 휘발유로 착각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는 점도 소송 이유로 들었다.

법원은 “주유소 직원이 차량의 연료 종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휘발유를 주유함으로써 이번 사고에 대한 과실을 지닌다”며 신씨에 대해 박씨에게 2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법원은 신씨의 주장 또한 일부 받아들여 운전자 측에도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차량의 연료 종류를 정확히 밝히고 정삭적으로 주유되는지 확인했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해 손해가 발생하는데 하나의 원인을 제공했다”며 박씨 측도 사고에 10%의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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