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선언' 휴지조각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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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사실상 대북 경제제재에 착수하면서 북.일 관계가 지난해 9월 북.일 평양선언이 나온 이후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다.

북한 화물선에 대한 입항(入港) 규제를 비롯해 북한에 미사일 부품을 판매한 기업 수사, 조총련 시설에 대한 면세혜택 취소 등 최근 일본 당국이 취한 일련의 조치들은 미국보다 오히려 일본이 대북 압박공세에 앞장서는 듯한 느낌마저 주고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은 당국 대변인과 언론매체를 통해 "일본이 계속 우리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강화한다면 그 후과는 파국적으로 될 것"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북한은 지난 11일 '조.일 우호친선협회' 대변인 성명에서 평양선언이 백지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 데 이어 16일자 노동신문을 통해 "일본의 행위는 공화국의 자주권과 존엄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악랄한 도전이며 조.일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범죄적 책동"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일본이 앞으로 북한에 대한 압박 공세를 늦추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국민대 이원덕(李元德)교수는 "지난달 열린 미.일 정상회담이 북한에 대한 일본의 태도를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며 "이는 일본이 미국의 대(對)테러 정책과 동아시아 전략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미.일 동맹을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일본인 납치 문제도 일본이 대북 강경책을 취하도록 만든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이 50여명이나 더 있다는 소문과 함께 일본에서 나도는 암페테민이라는 히로뽕 제조원료가 북한에서 유입됐다는 사실이 최근에 전해지면서 일본 국민의 대북 감정이 더욱 악화됐다.

특히 일본이 대북 강경책을 구사하는 이면에는 북한의 핵 개발을 구실로 경제력에 걸맞은 군사력을 갖춘 '보통국가'로 가기 위한 속내가 깔려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는 일본 국회가 최근 유사법제(有事法制)를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킨 데서도 드러난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양국 관계는 북한 핵 문제 해결 등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개선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다만 북한은 일본과의 대화 채널만큼은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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