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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리부동’ 디메트로돈… 외모는 공룡, 속 보면 포유류 조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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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9호 25면

고생대 페름기의 대표적인 단궁류 동물인 디메트로돈. 생긴 모습은 공룡과 비슷하지만 포유류에 가깝다. 등에 달린 돛은 체온조절 장치 역할을 했다.

공룡과 포유류, 누가 먼저 생겨났을까? 사람들은 대개 파충류인 공룡이 포유류보다 먼저 살았던 것으로 생각한다. 1억6000만 년 동안 육상을 지배하던 공룡들이 6600만 년 전 소행성 충돌로 멸종하고 그 자리를 포유류가 차지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포유류는 공룡과 함께 출연했다. 때는 트라이아스기의 3분의 2 지점인 2억3500만 년 전. 중생대는 트라이아스기-쥐라기-백악기로 나뉜다. 공룡과 포유류는 후기 트라이아스기부터 중생대 전체 기간을 거쳐 나란히 발전했다. 다만 공룡은 매우 큰 동물로 진화했고 포유류는 주먹만 한 크기의 야행성 동물로 진화했을 뿐이다.


진화 이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흔히 잘못 생각하는 게 있다. 바로 ‘어류→양서류→파충류→조류→포유류→인간’이라는 계단식 발전 개념이다. 혹시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해서 크게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모든 지식인이 하던 착각이고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파충류와 포유류는 거의 동시에 등장했다. 그 공통 조상은 무엇일까?

유양막류는 두개골에 있는 구멍인 관자뼈 창의 개수에 따라 무궁류(거북), 단궁류(포유류), 이궁류(기타 파충류와 조류)로 갈라져서 진화한다. 왼쪽부터 무궁류·단궁류·이궁류 두개골.

물에서 완전히 벗어난 양막류의 등장가장 먼저 육상으로 진출한 동물은 양서류다. 양서류는 말 그대로 물과 뭍, 양쪽에서 산다는 뜻이다. 말이 좋아서 양쪽에 다 산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물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이다. 양서류는 물속에 알을 낳고, 알에서 깨어난 올챙이는 물에서 헤엄을 친다. 그 후에야 겨우 뭍으로 올라올 수 있다.


물에서 완전히 벗어난 동물은 양막(羊膜)류다. 양막류는 달걀 같은 껍데기나 질긴 가죽으로 둘러싸인 알을 낳는다. 알의 수분은 증발하지 않지만 산소는 들어오고 이산화탄소는 배출된다. 발육 중인 배아가 바깥 세계로부터 보호되므로 굳이 물속에 알을 낳을 필요가 없고 따라서 올챙이 같은 어린 시절도 겪지 않는다. 양막류는 파충류와 조류 그리고 포유류의 공통 조상이다. 그러니까 네 발 달린 동물 가운데 양서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양막류에 속하는 셈이다.


양막류는 고생대 석탄기(3억6000만 년 전~3억 년 전) 후기 동안 폭증했다. 3억3000만 년 전부터 2억6000만 년 전까지의 7000만 년은 지구 대기에 산소가 가장 많았던 시기다. 석탄기 동안에 양막류가 급증한 이유는 분명하다. 육상에 낳은 알은 습기를 보존해야 하므로 껍질에 있는 구멍은 매우 작고 적어야만 한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이산화탄소를 바깥으로 배출하기도 어렵고 바깥에서 알 속으로 들어오는 산소의 양도 줄어든다는 것. 산소가 없으면 알은 발달할 수 없다. 양막란이 생존하려면 산소 수준이 오늘날과 비슷하거나 훨씬 높아야 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석탄기는 최초의 양막류가 등장하기에 최적의 시점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양막류들이 이때 발톱을 발달시켰다는 것이다. 육식 양막류가 먹을 것이라고는 대형 절지동물뿐이었다. 단단한 껍데기가 있는 절지동물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발톱과 함께 강한 턱이 필요했으며, 강한 턱은 강력한 근육이 있었음을 의미한다.석탄기가 끝나기 전에 양막류는 독립적인 세 혈통으로 갈라섰다. 서로 갈라서야 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커다랗고 강력한 턱 근육 때문이다. 근육이 커다랗게 성장하면서 두개골을 짓눌렀다. 일부 양막류는 양쪽 눈구멍 옆에 또 다른 구멍이 우연히 생겼다. 그러자 커다란 근육이 있어도 두개골을 짓누르지 않게 되었다. 이 구멍을 관자뼈창(temporal bone window) 또는 측두창(側頭窓)이라고 한다. 관자뼈창의 가장자리에 턱뼈 근육이 붙어 있다.

디메트로돈이 공룡으로 오인되는 데는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판타지아’가 한몫했다. 이 영화에는 고생대에 살았던 디메트로돈이 중생대의 티라노사우루스에게 쫓기는 장면이 나온다.

페름기의 최고 포식자였던 단궁류작은 구멍이 큰 차이를 가져왔다. 관자뼈창의 개수에 따라 혈통이 무궁류, 단궁류, 이궁류 등 세 개로 갈라졌다. 무궁류에서 거북이 나왔고, 단궁류에서 포유류가 나왔으며, 이궁류에서 거북을 제외한 모든 파충류(악어·뱀·도마뱀·익룡·어룡·공룡)와 조류가 비롯됐다.


단궁류가 가장 먼저 번창했다. 대략 3억2000만 년 전인 고생대 석탄기 후반에 처음 등장하였다. 디메트로돈(Dimetrodon)은 가장 대표적인 초기 단궁류다. 하지만 아직 포유류로 발전하지는 않은 상태다. 많은 사람들이 디메트로돈을 공룡으로 착각하고 심지어 이것이 공룡이라고 설명해 놓은 자연사박물관도 있지만 디메트로돈은 공룡이 아니다. 이런 착각에는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판타지아’ 중 ‘봄의 제전’의 책임이 크다. 애니메이션에는 디메트로돈이 다른 공룡들과 함께 티라노사우루스에게 쫓기는 장면이 나온다. 공룡은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야 등장하지만 디메트로돈은 고생대 페름기에 이미 등장했다. 디메트로돈은 생긴 것과는 달리 도마뱀 같은 파충류보다는 포유류에 더 가까운 동물이다.


디메트로돈이라는 이름은 ‘두 가지(di) 크기의(metro) 이빨(don)’, 즉 큰 이빨과 작은 이빨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아주 자세히 보면 어금니, 송곳니, 앞니가 조금 구분된다. 이것은 아주 획기적인 특징이다. 이빨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씹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단궁류는 턱을 구성하는 뼈 가운데 상당 수가 귓속으로 들어가버리는 바람에 위턱과 아래턱의 관절 부위가 달라졌다. 또한 관자뼈창이 단 하나만 있는 대신 커다랗기 때문에 턱을 닫는 근육이 두 개 발달했다. 그 결과 턱을 여러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단궁류의 후손인 우리도 입을 위아래뿐만 아니라 양옆으로도 움직인다. 단궁류는 먹이를 삼키기 전에 충분히 작은 조각으로 잘라낼 수 있다.


이에 반해 이궁류는 턱관절 부위가 유연하지 않은 상태 그대로 남았다. 관자뼈창이 두 개나 생겼지만 그 크기가 작았다. 덕분에 턱 닫는 근육은 오로지 한 개밖에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이궁류들은 턱을 위아래로만 움직인다. 즉 한 가지 방식으로밖에 씹지 못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이궁류는 이빨도 한 가지다. 모두 고기를 찢기 좋은 송곳니든지 아니면 모두 식물을 으깨기에 좋게 생긴 이빨인 식이다. 이궁류는 힘들게 씹어서 대충 삼킨다.


따라서 현생동물도 이빨만 보면 포유류(단궁류)인지 파충류(이궁류)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이빨의 종류가 여러 가지면 포유류, 한 가지면 파충류다.


현대의 도마뱀은 다리가 몸통 옆으로 나와 있기 때문에 걷거나 뛰면 몸통이 물결처럼 한쪽으로 뒤틀렸다가 반대쪽으로 뒤틀린다. 왼쪽 다리가 전진하면 오른쪽 폐가 눌리는 식이다. 따라서 발걸음 사이에만 숨을 쉴 수 있기 때문에 뛰면서 숨쉬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동물이 처음 육상에 정착했을 때부터 계속되고 있는 현상이다. 이렇게 불리한 동물이 육상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대기 중 산소 농도가 높아야만 했다.


단궁류는 다리의 형태도 변화시켰다. 디메트로돈은 현생 도마뱀처럼 걸었지만 단궁류의 다리는 진화를 거듭할수록 몸통 아래로 내려갔다. 걸을 때 몸통이 뒤틀리는 게 줄어들었고 움직이면서도 숨을 쉬게 되었다.


대멸종 거치며 이궁류가 지구 지배단궁류는 석탄기 후기에서 페름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산소 절정기에 다양하게 번성했다. 페름기가 시작할 무렵인 3억 년 전쯤에는 디메트로돈과 같은 단궁류가 육상 척추동물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몸길이도 3.6m 이상으로 커졌다. 디메트로돈은 등에 돛처럼 생긴 구조물이 달려 있어서 더 크게 보였다.


이 돛 모양의 구조물은 오전에 체온을 급속히 올리는 데 쓰이는 체온조절 장치였다. 돛이 아침 햇볕을 받을 수 있도록 돌아앉아 큰 몸을 재빨리 덥힌 디메트로돈은 다른 동물보다 먼저 움직여 사냥에 나설 수 있었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200㎏의 양막류 체온을 26도에서 32도로 높이는 데 205분이 걸리지만 돛이 있는 디메트로돈은 80분이면 됐다. 돛은 사냥 시간을 더 늘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위협과 짝짓기를 위한 과시용으로도 쓰였다. 그것으로 족했다. 산소 절정기에 포유류의 조상인 단궁류는 온혈성을 아직 진화시키지 않았다. 그냥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좋은 시절은 지나가기 마련. 페름기 동안 모든 대륙이 하나로 뭉쳐 판게아라는 거대한 덩어리가 됐다. 살기 좋았던 해안선은 줄어들었고 내륙은 사막으로 변했다. 대기의 산소 수준은 30%에서 20%로 급격히 떨어졌고 시베리아에서는 대규모의 화산이 터지면서 온갖 가스가 분출됐다. 100만 년에 걸쳐서 지구 생명의 95%가 멸종했다. 이궁류에 비해 온갖 장점이 있던 단궁류 역시 파국 앞에서 무기력했다.


파국은 언제나 새로운 기회다. 이번에는 이궁류가 기회를 잡았다.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들어가자 이궁류는 공룡·익룡·어룡이 돼 지구를 지배했다. 트라이아스기로 살아 넘어온 극소수의 단궁류는 이제야 양막란 대신 태반을 통해 번식하고 항온성을 획득한다. 마침내 포유류가 된 것이다. 하지만 단궁류는 이제 더 이상 최고 포식자가 아니다. 주먹만 한 크기의 야행성 포유류는 공룡 세상에서 숨죽이며 살아간다.


포유류는 공룡이 멸종한 다음에 생긴 게 아니다. 공룡과 같은 시기에 생겼다. 다만 그때 주도권을 쥐고 있지 못했을 뿐이다. 덕분에 포유류는 6600만 년 전 다섯 번째 대멸종에 살아남는다. ‘세상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은 기나긴 진화사에도 통한다.


이정모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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