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美여대생 피살사건 "FBI 보고서 증거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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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001년 3월 서울 이태원에서 일어난 미국 여대생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미국인 켄지 노리스 엘리자베스 스나이더(22.여)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2년여에 걸친 수사도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이번 재판은 한.미 간 범죄인 인도협정에 따라 한국으로 송환된 첫 사례다.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 형사1부(부장판사 김남태)는 19일 "미국의 연방수사국(FBI)과 미군범죄수사대(CID)가 작성한 수사보고서를 증거로 인정할 수 없고 본인도 범행사실을 부인하고 있다"며 스나이더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 당시 대구 K대 교환학생이던 스나이더는 친구들과 서울 이태원에 놀러갔다가 묵은 한 모텔에서 동료 페니치(23.여)가 살해되자 용의자가 됐다. 하지만 경찰 조사에서 혐의가 발견되지 않아 미국으로 돌아갔다.

경찰은 이후 스나이더의 진술이 사건 현장과 다르다는 점을 발견, 미국에 공조수사를 의뢰했다. 지난해 2월 미국으로 급파된 FBI 한국지부.CID는 스나이더에게서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한국 법무부의 요청으로 스나이더는 지난해 12월 한국에 송환됐다.

스나이더는 송환되자 범죄사실을 부인했다. 지난 1월 본지 취재진에 "나는 결백하며 자백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스나이더의 변호를 맡은 엄상익 변호사는 "구체적인 물증도 없고, FBI가 받은 자백도 내용이나 절차상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FBI요원들이 자백받을 때 변호사 선임 과정을 거쳐 관할 FBI지부로 소환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국내 형사소송법에 따라 국내 검사와 동일한 지위의 미국 검사가 제출한 수사결과 이외의 물증은 증거로 인정될 수 없다는 의미다. 미국인 범죄자의 경우 앞으로 혐의가 입증되거나 미국 검찰의 수사결과가 없는 한 처벌하기 어렵게 됐다.

한편 스나이더는 이날 오후 10시 영등포구치소에서 풀려나 어머니 시스 보조니(51)가 준 두부를 먹으며 "한국 법원이 공정하게 판결할 것으로 믿었다"고 말했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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