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거울로 오늘을 보다] 19. 巫俗으로 본 전통문화의 明暗-허동현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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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24년 발행된 잡지 '개벽'(48호)에 실린 '경성의 미신굴(迷信窟)'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당시 무속의 활약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채동지(蔡同知)라는 요물(무당)이 한번 나오매 장안 만호(萬戶)의 남녀가 과자를 사 가지고 선후를 다투어 그 놈의 침을 단꿀같이 받아먹었다"고 할 정도로 무속은 80년 전 서울의 번창하는 사업이자 일상 생활의 일부였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대통령 선거 때마다 무녀들의 점괘에 나온 선거 결과 예측이 뉴스로 취급되는 오늘날의 모습과 겹쳐 놓고 보면 어째 비슷한 점이 있지 않습니까?

최근의 통계를 보면 역술인과 무속인이 각각 10만명과 20만명을 웃돌고 영업 중인 점집이 20만개를 헤아리더군요. 운세.궁합 등의 역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 사이트 중에는 하루 4백만회의 방문 횟수를 기록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무속은 성리학자들과 개화파 인사들, 그리고 일제의 탄압과 견제 속에서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와 우리의 심성(psyche)을 지배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전통문화를 현대에 계승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릅니다. 전통문화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므로 지켜나가야 한다는 견해도 있고, 오늘의 필요에 맞는 문화만 선별하여 지켜나가야 한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과연 무속신앙은 오늘날의 한국인들이 계승하고 지켜야 할 종교이자 전통문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박노자 교수는 무속신앙을 없어져야 할 미신이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완충해 공동체의 안정을 가져오고 일상 문화를 풍요롭게 해준 '조선 민족의 상징'이자 '보편적인 종교'로 보는 것 같군요.

그러나 저는 당시 무속이 사라져야 할 폐습이었다고 보기에, 개화기 지식인들의 미신타파 노력이 광기라고 부를 만큼 잘못된 행위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무속신앙은 제정일치의 원시사회 때 말고는 한 번도 양지에서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배적 원리로서 기능하지 못했습니다. 음지의 틈새에서 개인적 기복(祈福)행위만을 부추기며 기생한 측면이 큰 것 아닙니까?

물론 무속은 우리나라에 들어온 모든 종교의 신앙 형태에 영향을 미친 고유 전통인 것도 분명합니다.

인류학자 조흥윤은 무속신앙의 순기능으로 공동체적 특성 못지않게 공존과 조화의 정신을 중요하게 꼽습니다. 다종.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종교분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보고, 이러한 무속신앙의 사회적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지요.

저 역시 무속신앙이 다(多)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데 기여한 바도 있으며, 특정 종교의 우열을 논하는 종교적 제국주의 관점을 배격해야 한다는 견해에 동감합니다. 그렇지만 무속신앙의 계승과 발전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생각해야 할 점이 더 많다고 봅니다.

기복에만 매달리는 무속신앙은 상충하는 개인의 이해만을 대변하기에 공동체 문화의 형성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고유한 전통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속신앙과 이에 기반한 한국 종교의 기복적 신앙 형태를 계승.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지적한 원로사학자 이기백의 견해에도 귀기울여야 한다고 봅니다.

폭력과 배제를 특징으로 하는 근대의 부정적 측면을 비판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지만, 그를 위해 근대의 긍정적 요소에조차 눈을 감아버려서는 안 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문화 전통으로서의 무속신앙과 특정 종교의 일파로서의 무속신앙은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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