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원룸 101호 경매에 참여하지 말아 주세요"…울산 장애인 보호시설에 걸린 현수막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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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유명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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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원룸 101호 경매에 참여하지 말아주세요. 저희가 낙찰받을 수 있도록 경매에 참여하지 말아주세요.”

“여러분들이 이곳을 경매로 낙찰 받지 않는 것이 장애인들에게 베풀 수 있는 봉사이자 후원입니다.”

울산시 남구 달동의 장애인 주간보호시설 ‘사랑의 집’이 있는 원룸 외벽에는 지난 8월부터 이런 현수막이 걸려 있다. 또 출입문에는 “오랜 장애인들의 유일한 쉼터를 탈취하지 마세요” “15년을 살아온 우리의 둥지를 빼앗지 마세요” 등의 문구가 적힌 종이가 빼곡히 붙어있다.

사연은 이렇다. 비영리 민간단체인 울산장애인복지회는 2004년 1월 이곳 원룸을 빌려 사랑의 집 둥지를 틀었다.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9시~오후 6시 사이에 보치아 게임, 라인댄스, 음악치료(합창), 도자기 공예 등 장애인을 위한 재활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현재 주중에 장애인 15명 등이 시설을 이용한다. 토요일에는 장애인 80여 명에게 이·미용 서비스와 식사를 제공한다. 그렇게 홀로 살거나 낮에 혼자 집에 있는 장애인들의 쉼터이자 놀이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최근 원룸 소유자의 금융 문제로 원룸이 경매에 넘어갔다. 소유주가 바뀌면 사랑의 집이 계속 이곳에 있을 지 알 수 없다. 류은숙 사랑의 집 시설장은 “처음 입주했을 때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보증금 7300만원에 월세 20만원을 내고 지낸다. 보증금이 많아 ‘소액보증금 우선변제’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보증금을 언제 돌려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쫓겨나면 우리는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더욱이 장애인 주간보호시설은 주민들이 썩 달가워 하지 않는 시설이라 다른 장소를 다시 찾기가 쉽지 않다.

결국 사랑의 집은 원룸 1층을 직접 낙찰 받기로 했다. 그러려면 2억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 가진 돈은 지난 10년간 모은 후원금 7700만원이 전부였다. 그래서 기금을 모으기로 했다. 교회와 지인 등을 찾아 도움을 구해 500만원 가량을 모았다.

그동안 원룸 101호의 경매가는 떨어졌다. 지난 8월 18일 1차 경매 때 2억1400만원에서 지난달 18일 2차에는 1억7120만원으로 하락했다. 모두 입찰자가 없어 오는 19일 3차 경매에서는 1억3696만원에 나온다. 문제는 경매가가 떨어지다 보니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류 시설장은 “4차 경매까지 기다려 볼 생각이었는데 최근 원룸에 관심을 갖고 경매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며 “지금 낙찰을 받지 못하면 우리는 길거리로 나앉아야 한다다”고 말했다. 사랑의 집은 우선 3차 경매에서 낙찰을 받은 뒤 1달 동안의 잔금 처리 기간에 모금을 통해 부족한 금액을 채우겠다는 생각이다.

류 시설장과 사랑의 집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이렇게 호소한다. “사랑의 집은 뇌병변장애인과 지체장애인들이 생활하고 이용하는 시설입니다. 이곳이 경매 처분돼 쫓겨난다면 갈 곳이 없습니다. 받아주는 곳도 없습니다. 우리들의 쉼터, 장애인들의 오랜 터전을 저희가 경매 낙찰 받기를 원합니다다. 장애인들이 보금자리에서 계속 지낼 수 있도록 제발 도와주세요.”

글·사진 울산=유명한 기자 famo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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