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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채인택의 직격 인터뷰

“청년 창업에 미래 있다”는 이상희 대한민국 헌정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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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채인택
채인택 기자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김상선
김상선 기자 중앙일보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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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헌정회 정책위원장은 과거 산업사회에서 산업공단이 역할을 했듯이 현재의 지식사회에선 디지털 공단을 만들어 전 세계의 인재와 자본이 제약 없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김상선 기자]

최근 청년 실업이 가속화하면서 일자리 대책이 시대의 과제로 떠올랐다. 이상희(77) 대한민국 헌정회 정책위원장은 과학기술을 이용한 청년 창업과 새로운 산업 창조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라고 강조한다. 4선 국회의원과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낸 이 위원장은 오랫동안 과학기술 진흥과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활동을 펼쳐왔다.

“한국이 두뇌 돼 생산기지인 중국과 협업해야”

-이 위원장께서는 과학기술을 통한 경제발전과 사회문제 해결을 주장해왔다. 이를 위해 정부와 사회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배경을 먼저 말씀드리겠다. 한국 역사에서 가장 불행했던 시기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던 때였다. 당시 이웃 일본은 메이지(明治) 유신을 해서 산업국가로 변모에 성공했다. 반면 우리는 외국에서 배가 오면 병인양요다, 신미양요다 하면서 보수와 쇄국을 외쳐 역사의 흐름을 외면했다. 그 결과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오늘날은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 넘어가는 커다란 전환기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우리가 제대로 하지 못하면 과거 불행했던 역사를 되풀이할 수 있다. 그때는 일본의 식민지가 됐지만 지금은 중국의 식민지가 될 수도 있다.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 신속하게 가야만 과학기술을 통한 경제발전을 이루고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상도 산업형 인재에서 지식사회를 이끌 수 있는 창조형 인재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역사의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현재 중국은 산업국가로 가기 위해 제조에 열심이니까 우리는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특허 등 두뇌생산성을 높이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자연스럽게 한국은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두뇌가 되고 중국은 공장을 돌리는 몸통이 될 수 있다.”

 -최근 지식사회 경쟁력의 핵심으로서 두뇌생산성을 강조해왔다. 두뇌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농업사회에서는 논밭에서의 노동생산성을, 산업사회에서는 공장에서의 공장생산성을 중시했다. 오늘날 지식사회에서는 두뇌생산성이 경쟁력의 원천이다. 우리들의 머리에서 돈을 벌 거리가 나오는 세상이다. 전형적인 인물이 영화 ‘아바타’를 만든 제임스 캐머런 감독, 애플의 스티브 잡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이 세 사람이다. 셋 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뛰어난 두뇌에서 농장이나 공장 대신에 돈을 버는 거대한 지적인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제는 두뇌생산성을 올리는 방향으로 교육, 연구, 기업 시스템을 바꾸고 지식사회로 옮아가야 한다. 두뇌생산성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인문·자연과학·예술 등 다양하다.”

 -이 위원장께서는 이를 위해서는 교육부의 대학평가 기준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바꿔야 두뇌생산성을 높이고 지식사회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까.

 “전문가들이 열심히 잘했겠지만, 요즘 시대는 급속히 바뀐다. 자동차를 운전해서 고속으로 달릴 때는 앞을 미리 예측해야 한다. 이 자동차처럼 광속도로 달리는 시대에 무엇보다도 예측을 정확히 해야 한다. 그럴 경우 우리가 봐야 할 가장 기본이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두뇌생산성을 올리는 투자가 바로 교육이다. 그런데 사실 이번 교육부의 교육평가는 내가 보기엔 현재 산업사회에 기반한 기준으로 평가했다고 생각한다. 미래의 지식사회를 바탕으로 하지 못한 평가였다.”

 -어떤 면에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기존의 대학평가는 학사 운영제도나 학교 경영상태가 중심이었다. 특히 학사 운영은 학생들에 대한 성적평가 등을 주로 살폈다. 나는 지식사회로 가기 위해선 이런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식사회에서 대학은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중앙연구소, 정부는 기획관리실, 기업은 생산부서 역할을 해야 한다. 중앙연구소 격인 대학은 연구실적을 놓고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연구실적의 비중은 낮고 대학의 시설, 재정 상태 같은 다른 영역을 중심으로 평가하고 있다.”

 -연구실적 중심으로 평가하는 사례가 있나.

 “대학은 아니지만 일본 기업 중에서 히타치가 대표적이다. 경영이 강하기로 유명한 히타치의 감사제도는 모든 부서가 변화에 대응하는 특허·지적재산에 대해 어떻게 대비하고 있느냐로 조직의 경쟁력을 평가한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지식재산 기업으로서 히타치를 만들겠다는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한국을 보면, 인터넷을 뒤져서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을 교수가 강의하고, 학생들은 이를 그대로 시험지에 옮기는 시험을 치고 있다. 지식사회로 가는 마당에 이러한 것들이 과연 필요한가 싶다.”

 -대안으로 어떤 게 있을까.

 “빌 게이츠 같은 사람들을 보면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이 사회 전체를 교육공간으로 삼았다. 이처럼 대학은 연구동아리·학습동아리를 만들어 키워내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대학 실습과제로 창업으로 가기 위한 여러 가지 리포트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대체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학생들이 이스라엘이나 덴마크 같은 교육 강국 출신과 경쟁해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다양한 학과의 학생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서 나온 리포트를 평가하는 것이다. 시험을 쳐서 한 사람이 학점을 받는 시대는 지났다. 팀워크가 중요하다. 이제는 대학에서도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다. 대학이 지식사회의 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석·박사를 2년 혹은 3년으로 기간을 정할 것이 아니라 성과에 따라 1년 만에도 딸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면 학생들이 더 효율적으로, 더 열심히 할 것이다.”

 -산학협력도 두뇌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강조된다.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 산학협력의 의미는 무엇일까.

 “앞서 이야기한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같은 사람들이 어찌 보면 대학 대신 지식사회의 현장에서 일하면서 필요하면 스스로 공부를 해 산학협력을 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캐나다 워털루 대학의 학생들은 1년 중 6개월만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나머지 6개월은 현장에서 실습을 한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 교육은 앞으로 대대적인 환골탈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술 개발과 창업 분야에는 무한한 상상력과 실패에 굴하지 않는 의지의 사연이 많이 있다. 이 위원장께서는 창업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를 강조해왔다. 이 시대 게임 체인저의 의미는 무엇인가.

 “쉬운 예로 연구개발은 머리에서 이루어진다. 연구개발이란 뜻으로 흔히 쓰는 R&D란 용어는 사실은 연구(Research)와 개발(Development)의 영문 약자를 딴 것이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R&D는 모험(Risk)과 위험(Danger)의 약자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핵심을 제대로 보지 않고 그저 연구개발이라는 표면적인 것만 본다. 모험과 위험을 감수하면서 도전한 사람이 바로 게임 체인저다. 1928년 처음 발견돼 42년부터 감염증에 쓰이기 시작한 페니실린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수많은 병사의 목숨을 구했다. 이 역시도 처음에는 개발에 실패해 쓰레기통에 버려진 것에서 시작됐다. 중요한 건 실패에 굴하지 않는 도전 정신이다.”

 -이 위원장은 게임 체인저로 일론 머스크를 대표적인 인물로 꼽아 왔는데.

 “머스크는, 쉽게 이야기하면 꿈에서나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을 좇아왔다. 거기에는 수많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그는 이를 게임처럼 즐긴다.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수많은 장애를 장애로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게임처럼 생각해서 끈기있게 상황을 바꿔나간다. 이것이 진정한 게임 체인저의 모습이다. 그는 숱한 실패 끝에 세상을 바꾸는 사람으로 우뚝 섰다.”

 -한국에서 이런 게임 체인저를 많이 키우려면 정부나 사회가 어떤 뒷받침을 해야 할까.

 “지금의 정부 제도와 조직은 아직 산업사회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한다. 이걸 전부 지식사회의 조직으로 바꿔야 한다. 현재의 고시제도 등으로는 앞으로 나가기 쉽지 않다. 현재 공무원의 상당수가 법을 공부한 사람이다. 법은 규격화된 궤도열차다. 하지만 현대 지식사회는 유연한 무궤도 열차다. 따라서 무궤도 열차들을 다룰 수 있는 창의적인 인재들을 관리할 수 있는 정부가 돼야 하는데 우리는 현재 철저히 규격화된 궤도에 있는 사람들이 그 일을 하고 있다. 세상은 지식사회에 들어서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전문가를 비전문가가 관리하는 형국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메르스는 아주 고도로 전문적인 분야다. 일반 방역을 하던 사람들이 이를 관리하다 보니 뒷북만 치다가 끝나게 돼 있다. 이런 걸 제대로 관리하려면 첨단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을 활용해서 대응했어야 했다. 문제는 그런 걸 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행정부 안에 없었던 것이다.”

 -대학생 창업을 쉽고 편리하고 신속하게 할 수 있는 직접적인 방안으로 무엇이 있을까.

 “산업사회 때는 산업공단이 만들어졌다.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유명한 것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자금과 관리 등 모든 것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런 시스템을 갖춘 곳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형 디지털 실리콘밸리를 만들어 세계 곳곳에서 물리적 제약 없이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산업사회의 산업공단처럼 지식사회의 디지털 공단인 셈이다.”

 -학생들에게 창업 의욕을 북돋는 방안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

 “지방정부에서 그런 걸 해줘야 한다. 호남 같은 경우 바이오, 대구 같은 곳은 교육 콘텐트를 주제로 경진대회를 여는 방안이 있다. 서울은 금융으로 다른 경쟁 행사를 열고, 강원도는 환경을 주제로 어떤 행사를 하든지 해서 대학이 해당 지역의 특성에 맞춰야 한다.”

 -창업 지원을 정부에만 맡길 게 아니라 과학계와 교육계도 나서야 하지 않을까.

 “나는 젊은이들이 온라인을 통해서 세계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면, 장년은 그동안의 관리경험을 거기에 전수해주고, 나이 많은 사람은 경륜을 이용해 조언을 해주는 방안을 제안한다. 나이 많은 이들의 경륜과 장년층의 관리능력, 젊은 층의 아이디어를 결합하는 것이다. 한때 중앙일보와 함께 ‘창조마을운동’이라는 것을 전개하려고 했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앞으로 가장 눈여겨봐야 할 분야가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앞으로 지식사회는 바이오 시대라고 본다. 그래서 가령 나이가 많은 이들이 걸리는 골다공증, 치매 등을 해결해주는 치료제가 나온다면 그 여파가 대단할 것이다. 더불어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가 참 많다. 이러한 갈등구조를 완충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과거 경륜만 가진 원로가 아니고 새롭게 사회에 참여해서 젊은이들을 이끄는 원로상을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렇다. 전면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젊은이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원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채인택 논설위원
사진=김상선 기자

이상희는 …

1938년생(77세)으로 서울대 약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약학 박사를 받았다. 약사와 변리사 자격증이 있다. 11, 12, 14, 15대의 4선 의원으로 활동했으며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과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내면서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였다. 의정 활동 중 ‘영재교육진흥법’ ‘이러닝(e-Learning) 산업발전법’ ‘뇌연구개발촉진법’ 제정을 주도했다. 대한변리사회 회장과 한국발명진흥회 회장, 한국영재학회 회장, 한국우주소년단 총재를 지냈다. 현재 세계한인지식재산전문가협회(WIPA) 회장과 (사)녹색삶지식경제연구원 이사장, 한국U-러닝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의정 생활 때 시작한 대학생 창업멘토 활동을 지금까지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