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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카에 빠진 현대인 … 그만큼 뭔가 허전해서가 아닐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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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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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 교수는 “30년 넘게 독일말을 쓰고 살았다. 모국어인 한국말이 제게는 어머니하고만 쓰는 말이 되었다”며 “단어들이 잘 안 떠오르는 걸 양해해달라”고 말했다. [중앙포토]

“자기애와 나르시시즘은 굉장히 다릅니다. 자기애는 건강하죠. 자기애라면 저도 많아요. 이와 달리 나르시시즘은 자기와 타자의 경계가 없습니다. 타자가 사라지면 ‘자기’도 못 느껴요. 공허함에 빠지죠. ‘셀카’를 찍는 건 자기애가 아닙니다. 공허함의 뒷면이에요.”

『피로사회』의 철학자 한병철
신간 『에로스의 종말』 발표

 재독 철학자 한병철(56) 베를린예술대학 교수의 말이다. 5년 전 독일에서 출간한 『피로사회』 이후 일약 유럽의 ‘스타 철학자’로 부상한 그는 신작 『에로스의 종말』 국내 출간에 때맞춰 5일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최근 독일에서 심각한 청소년 문제가 되고 있는 현상을 소개했다. “면도칼을 들고 (팔을 가리키며) 찢는 거죠. 여러 조사에 따르면 이런 자해를 10대의 20% 가량이 경험했고, 4%는 매일 반복합니다.” 이에 대한 그의 시각은 ‘몸을 경험하는 대신 경영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몸으로부터도 소외를 느끼는 거에요. 그 공허감에 셀카를 찍고 (몸을) 찢는 거죠. 피를 흘리면서 비로소 ‘자기’를 느끼는 변태적인 일이죠.”

 신작은 사랑 대신 우울증이 만연한 사회, 사랑조차 경영 프로젝트처럼 되어버린 신자유주의 사회의 면면을 각각 ‘멜랑콜리아’ 같은 영화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같은 소설을 예로 들어 분석한다. 그는 특히 『그레이의…』를 두고 “주인공 남성에게는 여성과의 관계도 잘 정리된 업무, 성과를 보장하는 프로젝트”라며 “그러면 사랑이 죽는다”고 말했다. “우리는 상처받지 않으려고 해요. 그런데 자아라는 건 상처를 받고, 고통을 느끼면서 성장하는 거예요. 자아가 성장하지 못하니까 공허해지는 거죠.”

 비판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도 이어졌다. “페이스북의 ‘좋아요’로는 갈등을 해결할 수 없어요. 헌데 갈등을 친구와 나누고 대화로 해결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죠.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시대는 ‘빨리빨리’인데.” 그는 이와 상반된 연애 경험을 소개했다. 독일에서의 학생 시절 일이다. “여자 친구가 한 달간 영국에 머물게 됐어요. 다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없으니까 매일 편지를 한 통씩 썼어요. 기억을 떠올려 그 여자를 유화로도 그렸고. 그 관계가 굉장히 강렬했어요. 아마 지금처럼 카카오톡이 있었다면 금방 헤어졌을 거에요. 사랑에는 거리가 필요해요. 거리가 없는 것과 ‘가까움’은 달라요.”

 이에 앞서 그는 “이번 책보다 훨씬 중요한 얘기”라며 시리아 난민 구조에 한국 정부가 적극 나설 것을 한참 호소했다. 그는 “IS와 신자유주의는 동전의 양면”이라며 “글로벌 자본주의에 동참하고 있는 우리나라 역시 유럽만큼은 아니라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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