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공천 대신 우선추천’ 김무성의 타협 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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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4일 “전략공천은 수용할 수 없지만 당헌·당규에 있는 우선추천은 실시할 수 있다”며 “(5일 출범할) 공천 특별기구가 ‘당헌·당규대로 공천하자’는 안을 결정하면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지난해 전략공천제를 폐기하고 여성·장애인 등 정치적 소수자 추천지역을 두는 우선추천제를 신설했다. 사진은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가혁신포럼에 참석한 김 대표. [뉴시스]

4일(일요일) 오후. 경남이 지역구인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내일(5일) 조찬 모임이 취소됐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당초 당 소속 재선 의원 20여 명이 5일 조찬을 함께하며 김무성 대표가 추진하는 국민공천제를 지지하고 전략공천에 반대하는 내용의 논의를 할 예정이었다. 이들은 지난 6월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 사퇴 파동 때도 “의원총회를 통해 선출된 원내대표의 사퇴를 일방적으로 결정해선 안 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었다. 그러나 이들의 조찬 모임 소식을 전해 들은 김 대표가 “공천룰 특별기구가 곧 꾸려져 실무를 맡을 텐데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만류하면서 회동은 취소됐다.

김 대표, 100% 여론조사 입장 선회
“국민 70%, 당원 30% 조사도 좋다”
작년 당헌 개정 때 만든 우선추천
‘경쟁력 낮은 후보’ 해석 논란 소지
오늘 공천룰 정할 특별기구 출범
김 대표, 위원장에 황진하 내정

 “공천룰 기구가 ‘당헌·당규대로 공천하자’는 안을 결정하면 수용하겠다”면서 ‘우선추천’제도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김 대표의 발언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당초 김 대표와 혁신위원회가 제안해 당론으로 확정됐던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그리고 ‘안심번호를 활용한 100% 여론조사 공천제’에서 한 발짝 물러난 입장이다. 김 대표의 한 측근은 “한마디로 당헌·당규에 정해진 대로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홍문종·윤상현 의원 등 친박 핵심들은 그동안 “당헌·당규대로 공천하자”고 주장해왔다. 윤 의원은 이날 “우리도 전략공천에는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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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은 지난해 당헌·당규 개정 때 전략공천제를 폐기하고 우선추천제를 신설했다. 김 대표가 “당헌·당규대로 공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친박계와 접점이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당장 100% 국민여론조사 대신 당원이 참여하는 여론조사도 김 대표는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이날 “안심번호를 활용한 100% 국민여론조사 방식을 개인적으로 선호하지만 저항이 강한 만큼 지난해 재·보선에서도 실시한 국민과 당원 여론을 각각 70%, 30% 반영하는 안도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김 대표가 전략공천 대신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 ‘우선추천지역’ 제도는 친박계도 환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우선추천지역이란 여성이나 장애인 등 정치적 소수자의 추천이 특별히 필요하다고 판단한 지역, 공모에 신청한 후보가 없거나 여론조사 결과 신청자들의 경쟁력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한 지역 등을 가리킨다. 김 대표의 한 측근은 “우선추천지역은 컷오프 등 인위적으로 정해진 숫자를 물갈이하는 전략공천과는 명백히 다르다”며 “한정적으로 적용되고 당헌·당규에 명시된 만큼 김 대표가 부정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가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처럼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나는 정당 민주주의를 위해 공천권을 내려놓겠다는 원칙 하나만 갖고 있다. 그러니 청와대와 싸울 일도, 싸울 이유도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청와대와 당 사정에 두루 밝은 한 의원은 “김 대표와 청와대가 서로 으르렁대는 모습을 보이면 내년 총선 승리는 물 건너갈 뿐 아니라 대선 승리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 발씩 양보하면서 접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물론 양측 간에 우선추천지역의 해석을 둘러싼 논란의 불씨는 남아 있다. ‘신청자들의 경쟁력이 현저히 낮다’는 판단 근거를 무엇으로 할지에 대한 의견 차 등이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결과적으로 전략공천을 원하는 친박계 일부가 공천룰 특별기구에서 이 부분의 재량권을 요구하며 세력 간 싸움이 다시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듯 5일 출범할 공천룰 특별기구를 둘러싼 김 대표와 친박계 간 기싸움도 팽팽하다. 친박계는 위원장에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태호 최고위원을 추천했지만 김 대표는 공천 실무를 맡아온 황진하 사무총장을 내정했다.

이가영 기자 ide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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