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인 혼자 지킨 실탄사격장 … 총 고정장치엔 자물쇠도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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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권총 실탄을 쏘는 사격장에는 여성 주인 전모(46·여)씨 혼자였다. 남성 관리인이 한 명 더 있지만 출근 전이었다. 그곳에 키 1m80㎝ 가까운 건장한 남성 홍모(29)씨가 들어왔다. 규정에 따라 사격하기 전 적은 이름과 연락처는 모두 가짜였다. 총을 쏘던 홍씨는 갑자기 흉기를 꺼내 주인을 찔러 쓰러뜨렸다. 그러곤 45구경(총알 지름 1.14㎝) 권총 1정과 실탄 19발을 챙겼다. 권총은 쇠사슬에 고리로 연결돼 있었지만 자물쇠가 달린 것이 아니라 등산용 고리처럼 손으로 특정 부분을 누르면 풀리는 것이어서 간단히 떼어낼 수 있었다.

부산 권총탈취범 4시간 만에 검거
이름·연락처 가짜로 적어도 몰라
경찰 “잠금장치·신분확인 강화”

 지난 3일 오전 9시30분 부산시 서면 실탄사격장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 실탄사격장 안전 규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일어난 사건이었다. 범인 홍씨는 사격장에서 권총과 실탄을 챙긴 뒤 약 3시간에 걸쳐 도심을 가로질러 6㎞가량 떨어진 부산지방병무청까지 걸어갔다. 그 다음엔 택시를 타고 부산시 기장군 쪽으로 이동하다 경찰 검문에 붙잡혔다. 범행 4시간 만의 일이었다. 홍씨는 “총을 갖고 우체국을 털어 식당을 차릴 돈을 마련하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또 “지난 1일에도 같은 사격장에 갔으나 당시는 남성 관리인이 함께 있어 범행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경찰에 따르면 현행법 상 사격장이 지켜야 하는 안전 기준은 영업시간에 사격장 관리인이 있어야 하고, 사격을 할 때 고객 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정도다. 이마저도 지키지 않았을 때 처벌 규정이 없다.

 사격 전에 적는 신원을 확인할 의무도 없다. 신승균 영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신원을 가짜로 적으면 총기를 탈취당했을 때 범인이 누구인지 바로 파악할 수 없다”며 “그러는 사이 총기 사고가 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일이 없도록 사격장 방문객에 대해 관할 경찰 지구대에 신원조회를 요청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격할 때 권총을 사슬 등에 자물쇠로 묶어놓아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하지만 지금은 오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총구가 앞쪽을 향하게끔 등산용 밧줄 고리 정도로 사슬에 연결하는 게 보통이다. 실제 부산 실탄사격장 사건 직후 경찰이 전국 14곳 실탄사격장을 모두 조사한 결과 9곳이 이런 식이었다.

 경찰은 뒤늦게 대책을 내놨다. 경찰청은 4일 “ 관리자 등 2명 이상 근무할 때만 사격 할 수 있도록 하고 총기는 사격자가 떼어갈 수 없도록 묶어놓는 등 규정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이날 홍씨에 대해 강도살인 미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사격장 총기 탈취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6년 10월 서울 양천구의 실내사격장에서는 광고 회사 직원을 가장한 20대 남성이 “사격용 권총과 실탄을 보여달라”고 한 뒤 업주가 물을 가지러 간 사이 권총 1정과 실탄 20발을 훔쳐 달아났다.

부산=차상은 기자 chazz@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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