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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수출과 함께 인술의 마음을 전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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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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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서울대 의대 교수
신경외과학

요즈음 대형병원에서 심심치 않게 외국인을 볼 수 있다. 전통 복장의 아랍 사람들, 금발의 러시아계 여인들이 병원 복도를 활보한다. 진료를 받으려고 우리나라를 찾아온 환자들이다. 병실에서 흰 가운을 입은 서양 의사가 한국 의사를 따라서 회진을 한다. 수술실에는 선진 의술을 배우려고 찾아온 외국 의사가 많다. 이뿐만 아니라 서울 강남 지역 병원가에는 성형수술을 받으려는 중국 관광객으로 붐빈다고 한다. 모두 의료 한류의 파워를 실감케 하는 모습들이다.

의료 지원 받다가 의료 지원 하는 나라가 된 한국
남을 위해 뜨거운 가슴 가진 의학도들 많아졌으면

 현재 우리나라 의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비약적인 의학 발전에는 스스로의 노력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어려웠던 시절에 외부의 도움도 한몫을 했다.

 한국전쟁 후 경제 부흥을 위해 우리나라와 미국이 논의를 시작했다. 우리는 대학 발전을 지원해 달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에 대한 투자가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서울대는 ‘미네소타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미국 국무부의 지원으로 미네소타대학과 학문교류협약을 맺을 수 있었다. 의학·농학·공학계의 젊은 학자들이 1955년 처음으로 미네소타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미국 교수들은 애틋한 사랑의 마음을 갖고 성심껏 지도했다고 한다. 귀국 후 이들은 각계에서 우리나라의 학문 발전을 이끌었다. 돈 몇 푼보다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는 우리의 요구가 탁견이었음이 증명됐다. 6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의학을 포함한 여러 분야에서 세계 수준에 진입해 있다.

 2010년 7월 ‘이종욱-서울 프로젝트’가 발족했다. 50, 60년대 서울대 의대가 받았던 도움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고 이종욱 박사의 정신을 기리는 뜻에서 시작된 사업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전 사무총장 이종욱 박사는 일찍이 세계 보건 증진에 관심이 많았다. 재임 중에는 특히 저개발 국가에서 결핵, 소아마비, 한센병, 후천성 면역결핍증 등 전염병 퇴치와 인재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왕성한 활동을 하던 중 2005년 5월 뇌졸중으로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전 세계가 안타까워하며 그를 애도했다. ‘이종욱-서울 프로젝트’는 미국의 ‘미네소타 프로젝트’처럼 개발도상국에 의학 교육과 의료장비를 지원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의료 지원을 받았던 우리나라가 이제 다른 나라를 돕는 나라가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우수한 학생이 의과대학을 지원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청년취업이 어려워지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의사가 되면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리라. 그러나 공부만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좋은 의사가 되는 것일까. 따뜻한 마음이 없는 의사라면 우리 몸을 믿고 맡길 수 있을까. 최근 대부분의 의과대학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함양시키려는 의도의 교육과정 개편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의료가 돈벌이 수단이 아닌 진정한 인술로 거듭나야 한다는 측면에서 올바른 방향 설정이라 할 수 있다.

 과거 일본에서 ‘바람에 맞선 라이온’이라는 노래가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어느 젊은 의사가 약혼자를 두고 아프리카 오지로 의료봉사를 떠났다. 남을 도우며 진정한 행복을 알게 되기를 3년, 기다리다 지친 약혼녀로부터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는 편지를 받는다. 젊은 의사는 눈물의 답장을 쓴다. ‘진료소에 모이는 사람들은 병에 걸려 있지만 마음은 나보다 건강합니다. 나 역시 여기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힘들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 되겠지만 행복합니다. (…) 마지막 인사가 될 것 같군요. 진심으로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이 노래가 유행하면서 일본에서 의대 지원 학생이 이례적으로 크게 늘었다고 한다. 자신의 행복보다 자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돕는 의사가 정말 멋지게 보여서일 것이다.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활동하시던 고 이태석 신부님이 생각난다. 많은 사람이 ‘울지 마 톤즈’를 보면서 헌신적인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 그는 성직자로 또 의사로 진정한 사랑과 감동을 남겨놓고 우리 곁을 떠났다. 앞으로 이태석 신부님 같은 뜨거운 가슴을 가진 많은 학생이 의과대학을 지원한다는 소식을 듣고 싶다.

김동규 서울대 의대 교수·신경외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