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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G] 세상사 엮어보기 - 두 얼굴의 난민 정책… 일본, 한국 등 말로만 '난민 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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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시리아에서 일본으로 도망쳐 온 주디(왼쪽)가 지난 1월 일본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 아들과 포옹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지난 1월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는 특별한 재회가 있었다. 시리아 난민 주디가 처음으로 아들과 만난 것이다. 시리아 정부군이 다른 아이를 살해하는 걸 목격한 뒤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던 주디는 2012년 일본으로 홀로 건너왔다. 당시 그의 아내는 임신한 상황이었다.

주디는 일본 난민지원협회(JAR)를 통해 일본 정부에 난민 신청을 했지만 기각됐다. 주디는 인도적 지원 대상이어서 일본에 머물 수 있었으나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아내와 딸 그리고 뱃속의 아들은 이라크 내 난민캠프로 향해야 했다. 결국 2년 반 만에 가족은 임시로 재회했다. 하지만 여전히 주디는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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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총회 연설장에서 연설중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유엔포토]

◇두 얼굴의 일본 난민 정책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9일(현지시간)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난민 문제에 목소리를 높였다. 출산율 하락과 노령화 대처를 위해서라도 난민에게 문을 열어야 한다고 촉구한 것이다.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과 평화헌법 개정에 대한 비난 여론 잠재우기 등을 위한 다목적 포석이다. 아베 총리는 “적극적 평화주의의 깃발을 높이 들고 어느 때보다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공헌하겠다”며 “일본이 경제지원과 교육, 보건 의료 협력을 적극적으로 실시해 난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일본의 난민 지원금이 작년의 약 3배인 8억 1000만 달러(9675억원)에 이를 것”이라며 “중동과 아프리카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7억 5000만 달러(8959억원)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난민 지원에만 15억 6000만 달러(1조 8484억원) 이상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의 적극적인 난민 지원 정책 발표는 회의장에 참석한 회원국 대표들의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회의 직후 기자들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얼굴을 바꿨다. 일본의 난민 수용과 관련해서 그는 “난민이나 이민을 받기 전에 출산율을 높이고 노령화 문제를 해결하는 등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며 선을 그은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준으로 국내총생산(GDP)를 끌어 올려야 하며 사회 안전보장 시스템도 강화하는 등 자국 내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리아 등에 대한 경제적 지원으로)일본의 책임을 충분히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는 말도 했다. 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난민 구제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라고 평가했다. 일본이 미국에 이어 가장 많은 돈을 내고 있지만 실제 난민을 받아들이는 ‘행동’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에 5000명 가량의 난민 신청자가 있었지만 11명만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인도적 배려’ 차원에서 정부가 체류를 허가한 이들도 110명에 그쳤다. 주디처럼 시리아 사태로 난민 신청을 한 이들은 60명이지만 3명만이 난민으로 인정 받았다. 일본이 ‘난민 쇄국’으로 불리는 이유다. 오가타 사다코 전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은 24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난민 수용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것은 적극적 평화주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일본의 이중성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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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도별 난민 신청자 현황 [자료=난민인권센터]

◇한국도 비난 벗어날 수 없어

일본뿐 아니라 한국도 난민 쇄국인건 마찬가지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전 세계 선진국 44개 국가를 난민 수용 가능국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일본만 난민 수용 가능국으로 분류되어 있다. 아시아에서 난민을 수용할 여력이 있는 2개국가라는 의미다.

하지만 한국은 1994년 이후 지난 7월까지 1만 2208명의 난민 신청 중 522명만 인정했다. 단순 계산으로 7.3%가량 난민 인정을 받은 것이다. 지난해로 좁히면 2896명이 난민 신청을 해 94명만 난민 지위를 인정 받았다. 100명 중 3명만 통과하는 바늘구멍이다.

국제적 이슈가 되고 있는 시리아 출신 난민의 경우 2011년 내전 이후 신청자가 급증했다. 94년 이후 713명(5월말 기준)이 난민 신청을 했는데 3명만 인정 받았다. 지난해와 올해 577명이 인도적 체류 결정을 받기는 했지만 난민 허가만 놓고 보면 0.4% 수준이다. UNHCR이 기대하는 난민 수용 가능국 역할을 못하는 셈이다. 시리아의 경우 한국 전쟁 당시 한국에 물자를 제공한 40개국 중 하나다.

한국은 2013년 동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시행하며 국제사회의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여전히 난민 수용에 적극적이지 못하다는 평가가 많다. 법무부는 올해 지난 20일 태국·미얀마 접경 난민캠프에 머무르는 미얀마 난민 30명을 한국으로 데려와 정착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한국 정부가 2015년 강제이주 피난민을 돕기 위해 내 놓은 금액은 5개 분쟁지역(이라크· 우크라이나·남수단·수단·팔레스타인가자지구)에 총 900만 달러(100억원)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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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인도네시아 해안에서 발견된 로힝야족 난민 [AP=뉴시스]

◇아시아 난민들은...

동아시아에서 발생하는 난민의 다수는 미얀마와 방글라데시에서 탈출하는 해상 난민(일명 보트피플)이다. 미얀마 소수민족으로 이슬람교을 믿는 로힝야족의 경우 종교 갈등과 인권 탄압을 피해 올해 1~3월 사이에 2만 5000명이 탈출했다. 국제이주기구(IOM)는 지난해 동남아 지역에서 발생한 난민을 9만 4000여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은 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인접국으로 망명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들 정부는 해상에서부터 입국을 차단하고 있다. 보트피플은 어선을 타고 호주까지 항해해 난민 신청을 하고 있지만 호주도 강경하게 난민 수용을 거부하고 있다. 전임 토니 애벗 총리에 이어 말콤 턴불 호주 신임 총리도 지난 24일 “난민이나 망명 신청자들이 호주에 재정착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호주는 파푸아뉴기니의 섬 마누스와 나우루 공화국에 역외 난민 수용소를 운영하며 1500여명의 난민을 임시 수용하고 있다. 반면 미국 정부는 2015년(회계연도 기준) 1만 3000명의 동아시아 난민을 수용키로 하는 등 아시아 난민 수용에 적극적이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아베 #아시아 #난민 #시리아 #로힝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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