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손님 둘이 이번 주 워싱턴을 방문한다.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교황은 도덕적 권위를 바탕으로 기후변화나 이민 문제같이 국제협력이 필요한 중요한 사안에 대해 호소한다. 반면에 시진핑 주석은 중·미 관계의 긴장감이나 동아시아 지역의 불안감 같은 문제를 솜씨 좋게 회피한다.
시 주석은 22일 시애틀에서 행한 정책 연설 서두에서 덩샤오핑(鄧小平)의 위대한 유산인 ‘중국의 평화로운 부상(中國和平?起·China’s peaceful rise)’을 끄집어냈다. 덩은 중국이 개발도상국가이기 때문에 국민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내부 발전에 집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막강한 권력을 확보했지만 개혁은 중단 혹은 역주행
미·중 갈등, 동아시아 불안 등 진짜 중요한 문제는 회피
덩의 구상은 두 가지 큰 틀에서 구현됐다. 첫째, 중국은 점진적으로 보다 개방적인 시장 중심 경제로 전환했다. 둘째, 점진적인 정치개혁이 추진됐다. 중국이 하루아침에 민주국가가 되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시절에는 법치의 강화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이 있었다. 선거 개혁 실험도 있었다. 예컨대 마을 단위에서 말이다.
하지만 시진핑 시대는 ‘평화로운 부상’ 접근법과 거리가 멀다. 경제개혁은 중단됐다. 정치개혁은 역주행하고 있다. 외교 정책에 있어서는 온건함보다 현상유지를 깨보겠다는 미묘한 시도가 눈에 띈다.
시장 개방과 관련해 시 주석은 연설에서 중국이 외국 기업을 차별하지 않을 것이며 법을 준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애틀 연설을 들은 기업인들은 중국이 경제력을 무기로 세계적인 기업에도 침묵을 강요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특히 지금 가장 뜨거운 쟁점은 중국이 정보기술(IT) 기업들에 ‘보안서약서’를 요구한 것이다.
국내 개혁 또한 정체됐다. 7월의 주식 시장 붕괴에 중국이 대처한 것을 평가해 보면 큰 실책이라는 게 중론이다. 또 중국 정부가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시장에 개입한다는 것도 여실히 드러났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 정부가 한 일들을 맹렬하게 옹호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그는 시장이 요동친 것은 국제적인 요인들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주가를 조작한 사람들은 수사의 대상이 됐다. 사실 중국 정부는 마치 치어리더처럼 주가가 폭등할 때 흥을 돋웠다. 주가 상승이 시진핑의 비전인 중국몽(中國夢)을 방증한다는 믿음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중국의 금융 부문은 정부의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다.
시진핑 통치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정치 영역에서 발생했다. 사람들은 마오쩌둥(毛澤東) 시대 이후에는 권력의 집중이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시진핑은 그런 예측을 깼다.
명분은 부패와 싸우기 위해 권력 집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국 외부에서도 이런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 시진핑은 시애틀 연설에서 공산당이 부패했다는 것을 시인했다. 하지만 부패의 원인은 부분적으로 일당 지배, 언론 통제, 정부의 잘잘못을 심판할 수 있는 선거제도의 결여다. 반(反)부패 캠페인은 시진핑과 동맹관계인 인물들은 건드리지 않는다. 과연 누가 다음번 표적이 될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그런 가운데 민간 자본이 중국을 떠나고 있다.
다른 정치 상황의 전개는 모두 강화된 통제를 가리키고 있다. 시진핑은 법원의 독립성에 제한을 가하고 있으며 법조계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체포나 위협을 수단으로 삼고 있다. 그는 또한 중국에 들어온 외부의 비정부기구(NGO)들이 활동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이번 연설에서 시진핑은 NGO들이 강화된 중국의 법규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궁극적으로 군부의 힘에 의지하는 보안기관과 프로파간다 기관도 정치적인 중요성이 강화됐다.
외교 정책 분야는 어떤가. 중국의 급격한 부상이 위협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덩과 그의 후계자들은 이웃 나라들을 안심시키는 외교정책을 폈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불안이 아니라 협력을 증대시키는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하지만 시애틀 연설은 미·중 양국 간 모든 안보 분야의 골칫거리에 대해 침묵하거나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시진핑은 정부나 군부와 연결된 해킹 활동은 없다고 잡아뗐다. ‘현행범’으로 발각됐는데도 말이다. 이번 방문으로 미·중 간에 사이버 안보 문제를 다루는 프로세스가 마련될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다. 하지만 해킹 활동 자체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신뢰를 쌓기는 힘들 것이다.
미·중 관계나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를 위협하는 다른 안보 문제에 대해 시진핑은 함구했다. 대만을 겨냥한 군비 증강, 남중국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군사시설 건설, 우주공간의 군사화 같은 문제들이다.
시진핑은 이번 방문을 통해 미국 국민을 안심시키려고 한다. 미국 TV 쇼를 언급하는 등 서민적인 모습을 보인다. 또 미·중 협력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하지만 이번 방문은 미·중 관계를 복원하는 데 필요한 노고(勞苦)에 대해서는 그 어떤 시그널도 보내지 않았다.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UCSD)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