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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신창타이·원중추진 맞서려면…오퍼상 말고 현지화에 전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국 시장이 정부의 ‘신창타이(新常態)’ 정책에 맞춰 구조적 변화의 대전환기를 맞으면서 한국 기업들도 ‘신전략(新戰略)’을 요구받고 있다. 중국 제조업이 급성장하면서 국내 수출도 증가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은 “양국의 ‘탈(脫) 동조화’가 확대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징후는 확연하다. 최근 정의선(46) 현대자동차 부회장의 최대 고민 중 하나는 ‘중국 판매량 감소’다. 현대기아차는 올 1~7월 중국에서 89만8000대를 판매했다. 전년보다 9% 넘게 줄었다. 점유율은 10% 대에서 8% 대로 추락했다. 대대적 ‘가격 인하’ 처방도 통하지 않았다. 결국 지난 달 중국 임원진을 대폭 교체했다. 미국차·독일차도 사정은 비슷하다.

‘일시적 내수 침체’가 원인은 아니다. 장병송 KOTRA 중국사업단장은 “판매량과 비교해 너무 많은 차량이 생산되는 ‘과잉 생산’ 구조가 고착화돼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후진국→고속성장→생산설비 증가→과잉 생산→내수 위축→성장률 약화’의 구조적 후유증을 겪는다는 지적이다. 일종의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이다.

철강업에선 중국 산업계 변화의 본질을 더욱 선명하게 읽을 수 있다. 중국엔 163개 철강사가 포진해 있다. 이들의 지난 2001년 세계시장 점유율은 14%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난해엔 55%까지 치고 올라왔다. 포스코경영연구원 신현곤 철강연구센터장은 “처음엔 중국내 건설·인프라 투자용으로 생산량을 늘렸지만 ‘공급 과잉’ 폐해가 나타났다”며 “한국에도 중국산 ‘저가 철강’이 쏟아졌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중국산 철강 수입은 전년보다 34% 급증한 1339만톤에 달했다. 현대경제연구원 한재진 연구위원은 “과잉투자에 기대 성장을 했지만 이제 ‘아픈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난다”고 진단했다. 특히 지방 정부들이 ‘고용·재정확보’ 를 위해 철강·석유화학 등 장치산업 증설에 돈을 퍼부었지만 과잉생산과 함께 한국은 물론 세계 경제까지 끌어 내린다.

중국이 ‘신창타이’를 내걸고 나선 이유도 이런 한계 때문이다. 대규모 정부 주도 투자와 수출로 연 10% 성장을 이끌던 ‘구(舊) 패러다임’이 삐걱댔다.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엔 미국·유럽연합(EU) 경기침체 영향으로 ‘수출→내수’의 정책 전환이 있었다. 그리고 ‘안정속 발전(원중추진·穩中求進)’을 토대로 신창타이 정책을 펴는 것이다.

특히 중국에서 ‘산업의 서비스화’는 구조적 변화의 상징적 모습이다. 1980년 20%대 초반이던 서비스업은 지난해 48%까지 높아졌다. 중국 기업에 원자재를 납품하고, 현지 공장을 설립해 물건을 제조하는 국내 기업들의 전략도 효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신창타이의 목표엔 ‘산업 고도화’도 핵심으로 포함된다. ‘저비용→첨단기술’로의 도약을 꾀한다. 중국은 2012년 ‘전략적 7대 신성장 산업’을 발표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의 집중 육성도 포함됐다. 현재 한국의 대중국 수출 1위가 반도체다. 하지만 중국은 국부 펀드 28조원을 마련해 기술 격차 해소에 나섰다. 조철 산업연구원 자동차·부품산업정책실장은 “우리 수출 주력품인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특별한 해외 경쟁자는 없다. 다만 중국이 무섭게 부상 중”이라고 우려했다. 중국은 한국이 아닌 ‘독일’을 추격 목표로 놓고 제조업 강국을 추구하고 있다.

한국 기업의 대응 과제는 한둘이 아니다. 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전 주중대사관 경제공사)는 “국내 업체들의 대중국 전략은 뚜렷하지 않다”며 “아직도 오퍼상 같은 행동에 그칠 때도 많다”고 지적했다. 김시중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원자재 등 부품 위주 수출에서 (신창타이 정책에 따른)민간 소비용 완제품을 내놔야 한다”며 “유통구조 개척과 애프터서비스 등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희옥 성균관대 중국연구소장은 “중국의 광역 지역 개발에 대한 전략이나 메가시티 등 새로운 시장을 연구하라”는 주문도 있었다.

다만 한계가 예상되는 산업에선 생산 거점 이전 등 ‘출구 전략’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태환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은 “이번 계기에 지나치게 중국 의존적인 산업에선 ‘포스트 중국 시장’ 개척을 서둘러야 할 때”라고 했다.

문병주·임지수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도움말 주신 분들(가나다순)
김시중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운회 한화케미칼 링보법인 팀장, 민동준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교수, 신현곤 포스코경영연구원 철강연구센터장, 유현 베이징 한국중소기업협회장, 이병영 현대모비스 상하이 부품물류센터 법인장, 이태환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이희옥 성균관대 중국연구소장, 장병송 KOTRA 중국사업단장, 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조용원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 조철 산업연구원 자동차·부품산업정책실장, 한성희 포스코차이나 수석부총경리, 한재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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