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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진명, 한 권의 책이 생각을 바꾼다 인생을 바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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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시사미디어 전민규 기자

현실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책이 문학
작가들 정치·경제 등 지식 범위 넓혀야
문학적 향기만 좇다 한국소설 가뭄이 와

“책을 읽는다는 건 한 사람의 정신과 영혼을 읽는 일이다.” 작가 김진명(57)의 말이다. 그가 내놓는 작품은 매번 독자에게 관심을 받아왔다. 1993년 데뷔작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지금까지 700만 부 넘게 팔렸다. 5권까지 나온 대하소설 『고구려』는 150만 부, 지난해 내놓은 『싸드』는 20만 부가 팔렸다. 지난달 나온 『글자전쟁』도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에게 책이란, 그리고 소설이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다. 지금 책의 의미는.

“책은 단순한 지식·정보의 나열이 아니다. 책 속에는 쓴 사람의 정신이 들어 있다. 이 정신을 배우고 평가하고 자신과 견주어 볼 수 있다. 같은 지식·정보라도 인터넷과 책은 다르다. 인터넷은 그야말로 뿌리 없는 지식이다. 책은 작가의 시각을 담아 배열해 놨다. 독서는 내면의 힘을 키워나가는 일이다. 이는 우리가 중요하다 여기는 돈, 지위, 지식, 외모, 권력과는 다르다. 진지함, 성실함, 숭고함, 정의로움, 선량함, 희생, 효 등을 말한다. 이는 인간에게 굉장히 필요한 것이다.”

-소설의 의미는.

“가장 큰 정신은 사회과학서나 실용서를 읽어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문학에서 나온다. 문학을 읽으면서 독자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감동과 흥분이 머리 깊숙이 박힌다. 살기 어렵고 경제적으로 힘드니 실용서에서 당장 필요한 지식을 얻으면 삶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100권의 실용서, 1000권의 사상서보다 마음을 울리는 건 한 권의 문학서다. 자신을 돌이켜 봐라. 많은 사람이 어릴 때 읽은 소설 하나 때문에 생각이 바뀌고 삶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문학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 않다. 허구를 동원하지만 현실에 가장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게 문학이다.”

-삶에 영향을 미친 소설을 꼽는다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좋아했다. 세상을 단순하게 보지 않는 게 매력이다. 누구나 꿈을 꾸지만 그 꿈을 다 달성하진 못한다. 1등을 하고 싶어하지만 1등은 한 명뿐이다. 삶은 성공하기보다 실패하기 쉽고 꿈은 깨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따뜻하고 밝고 성공하는 얘기만 하면 철없는 작가다. 깊이 있는 작가는 실패, 비극,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영혼을 보고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 지에 대한 해답을 내놔야 한다. 이 관점에서 도스토옙스키가 단연 최고다. 특히 『죽음의 집의 기록』 『가난한 사람들』이 기억에 남았다.”

-최근 ‘한국 소설 가뭄’이란 말이 나온다. 독자들이 한국 소설을 많이 읽지 않는다.

“소설은 굉장히 자유로운 글이다. 모든 걸 품을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작가 집단과 평단이 보는 소설은 협소하다. 주된 관심사는 문체와 ‘문학적 향기’다. 여기서 문학적 향기란 권력·횡포 같은 외부 자극에 방황하고 갈등하는 주인공의 의식을 주로 다룬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금 소설 시장을 휩쓸고 있는 외국 작품들은 그것만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게 아니다. 그 안에 유머와 가치관·철학 때론 무가치관과 무철학 같은 여러 가지가 담겨 있다. 또 온갖 종류의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독자가 오히려 작가보다 더 수준 높은 상황이 됐다. 독자들이 모르는 게 없다. 그들에게 천편일률적인 옛날 얘기를 하는 건 책 읽기를 따분하게 만드는 거다. 지금까지 정도의 실력과 수준으로는 독자를 움켜쥐고 갈 수 없는 상황이다.”

-어떤 소설이 필요하다고 보나.

“사건은 단순하지 않다. 여러 일이 복합적으로 물려 있다. 한 면만 보고 설명하려 들면 안 된다. 작가가 무엇을 하나 쓰려면 정치·경제·외교·문화·철학 같은 여러 분야를 전반적으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독자를 만족시킬만 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 작가들 지식 범위를 더 넓혀야 한다.”

-책을 낼 때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우리나라와 민족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느 길로 나아가야 하는가. 이는 우리 사회가 존속하고 발전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이 의식이 내 작품에 깔려 있다. 개인으로서의 한국인은 약하고 우둔하지 않다. 집념이 강하고 빠르고 성공하려는 의욕도 높다. 그러나 사회·국가로 넓혀서 보면 혼란에 빠져있고 자부심도 느끼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한 의문과 불만이 상당하다. 사회가 전부 돈 버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부심을 느낄 만한 역사의 뿌리와 문화를 팩트(사실)로 입증해서 합리적으로 설명해주니 독자들이 다가오는 거다.”

-독자에겐 관심받지만 문단에선 여전히 ‘이방인’ 같은 존재다.

“(내 작품을) 평단에서 평을 안 하니 굉장히 편하다. 가타부타하면 얼마나 귀찮겠나. 대단히 고맙다. 한국에서 작가가 탄생하는 구조는 교수나 유명인에게 사사를 하고 그 교수와 친한 교수나 평론가가 평을 해주는 식이다. 수십 년간 지속된 구조다. 국내에는 문학상 같은 작가 등단 무대가 많다. 그렇게 몇백 명씩 등단한다. 그러면 작가고 그렇지 않으면 작가가 아니라는 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썼을 때 ‘소가 뒷걸음질치다가 쥐 한 마리 잡았다. 앞으로 영원히 다른 소설은 안 나올 것’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이후로도 소설들이 나왔고 베스트셀러가 되니 그렇게 험담하는 사람은 없어졌다. 어떤 일이 진실이면 처음엔 먼지로 출발해도 나중에 태산이 되고 진실이 아니면 대단한 폭풍이었다가도 한 줌의 바람도 남지 않는다. 세간 평판은 덧없다 생각하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최근 『글자전쟁』을 내놨다.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의 뿌리를 정확하게 찾자는 것이다. 중국 고고학자들은 은나라를 동이족이 세웠다고 결론 내렸다. 은나라 수도 은허가 있던 지역에서 동이족의 인골·유물과 무덤 형태가 나와서다. 여기서 갑골문 4500여 자도 나왔다. 이를 지금 ‘한자’라고 한다. 은나라에서 나온 글자는 당연히 동이족의 문자다. 동이족의 95%가 한족에 흡수됐고 나머지는 우리 민족이다. 한자는 우리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고구려』 5~10권을 쓰는 데 열정을 다 바칠 거다. 6·7권은 내년 4월에, 8~10권은 2017년 말까지 마칠 예정이다.”

-독자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나.

“한국 역사와 문화의 실종에서 오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것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에 대해 써왔다. 최선을 다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세우고 싶어했던 작가로 기억되면 기쁠 거 같다.”

인터넷 정보는 뿌리 없는 지식
책은 내면의 힘을 키운다
돈 · 지식 · 지식 · 권력의 힘이 아닌
진지함 · 숭고함 · 정의로움의 힘을

글=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사진=중앙일보시사미디어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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