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신용카드 복제기가 인터넷에 떠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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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원 가량의 돈, 그리고 스마트폰 사진을 컴퓨터와 주고받을 정도의 실력. 그거면 까만 띠가 붙은 마그네틱 신용카드를 복제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복제한 카드로 금은방에서 귀금속을 사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직업이 없는 김모(41)씨는 지난 8월 인터넷 카페에서 지모(35)씨 등 3명을 만났다. 논의 끝에 신용카드 복제를 공모했다. 인터넷에서 복제에 필요한 기기를 쉽게 구입할 수 있고, 초보자도 기기 매뉴얼 정도만 보면 복제를 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김씨 등은 인터넷을 통해 카드 복제에 필요한 스키머(skimmer)와 리더기를 50만원에 샀다. 리더기는 정상적인 신용카드에서 정보를 읽어들이는 기기고, 스키머는 이렇게 읽어들인 정보를 가짜 신용카드에 입력해 진짜 신용카드처럼 만드는 장치다.

다음 단계는 신용카드 정보 확보였다. 이를 위해 지씨가 주유소에 취직했다. 고객들이 카드를 주면 결제하는 척하면서 동시에 리더기로 카드에 마그네틱 라인(검은 줄)에 담긴 정보를 읽어들였다. 차에서 내리지 않고 신용카드만 건네는 손님들이 대상이었다. 이런 고객은 결제 과정을 주의 깊게 지켜보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런 방법으로 125명 신용카드 정보를 빼냈다. 다음은 가짜 카드를 만들 차례였다. 그것도 어렵지 않았다. 아무 정보가 들어있지 않은, 가짜 카드 만들기용 ‘빈 카드’를 인터넷에서 살 수 있었다. 진짜 카드에 담겨 있던 정보를 싹 지우고 남의 정보를 담아 새 카드로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경찰은 “카드를 복제하는 데는 컴퓨터 지식이 필요 없다. 그냥 게임을 하는 수준이면 누구나 카드를 복제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본지 기자가 특정 검색 포털에서 ‘카드 스키머’란 검색어를 입력해 보니 복제기기를 판매한다는 카페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판매가 불법인데도 그랬다. 한 카페 에선 “직접 만나 노하우를 전수해준다. 1분 만 배우면 카드를 복제할 수 있다”고 했다.

아직까지 신용카드에 붙은 IC칩 복제는 쉽지 않다. 하지만 마그네틱 복제만 해도 사용에 거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대부분 점포에 IC리더기가 없어 마그네틱 라인 정보만 읽기 때문이다. 흔히 보는, ‘카드를 긁는’ 결제기가 마그네틱 리더기다.

주유소에서 빼돌린 정보로 카드를 복제한 김씨 등도 그랬다. 복제 카드로 수도권 금은방 7곳에서 800만원어치 귀금속을 사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들은 귀금속을 대구 지역 금은방에서 팔아 현금을 만들었다.

충남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21일 김씨 등 3명을 구속했다. 석정복 광역수사대장은 “IC 신용카드 결제기 보급률이 10% 선이어서 마그네틱 복제만 해도 피해를 입게 된다”고 말했다.

홍성=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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