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티백(tea bag)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고대 중국의 차문화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문헌은 당(唐)나라 육우(陸羽)의 '다경(茶經)'이다. 여기에 따르면, 고대 중국인은 찻잎을 끓여서 찧어 굳힌 후 마셨다. 하지만 요즘엔 중국에서도 흔히 우룽(烏龍)차와 바오중(包種)차로 불리는 부분 발효차를 마신다. 바오중 차는 발효도가 낮아 녹차에 가깝고 우룽차는 발효도가 높아 홍차에 가깝다.

중국차가 서양에 전파된 건 17세기 초 네덜란드인들에 의해서다. 당시 중국차는 신비로운 동양의 영약으로 알려지면서 차붐을 일으켰다. 특히 영국에서의 붐은 폭발적이었다. 이런 차문화 붐은 동양교역 경쟁을 촉발했고 18세기 초 네덜란드를 몰아낸 영국은 이후 1백년 넘게 중국차 무역을 독점했다.

영국의 차붐은 산업혁명의 여파가 컸다. 산업혁명으로 낙농을 하던 농민계급이 공업노동자와 샐러리맨으로 바뀌면서 우유 부족이 심각해지자 영국 정부가 우유 대용으로 홍차를 장려했던 것이다. 당시 서민계급은 우유에 홍차를 넣었고 상류계급은 반대로 홍차에 우유를 넣어 마셨다. 영국이 차문화의 왕국이 된 데는 이런 사회경제적 배경이 작용했다.

하지만 오늘날 전 세계 차시장을 휩쓰는 티백(tea bag)은 미국인이 발명했다. 뉴욕의 차상인이었던 토머스 설리번이 1908년에 소량의 실크 샘플 백을 만들었는데 이게 오늘날의 티백의 시초다. 이후 티백 사용량은 꾸준히 늘어 요즘에는 차 유통량의 85% 이상을 차지한다. 티백은 서양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품이 됐다. 각국 퍼스트 레이디와 얽힌 일화도 많다.

'세계인권선언'탄생에 기여하는 등 역대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들 중 가장 열렬한 사회활동을 했던 엘리너 루스벨트는 여성의 사회참여에 대한 각종 비난과 시비가 일 때마다 "여성은 티백과 같다. 뜨거운 물에 빠질 때까지 그녀가 얼마나 강한지 아무도 모른다"는 명언으로 여성들을 옹호했다.

힐러리는 최근 출간한 자신의 자서전에서 백악관에 입성한 클린턴과 자신을 "이리떼처럼 물고 늘어지는 공화당 세력들의 공격에 직면할 때마다 '여성은 티백과 같다…'는 말을 새기며 견뎌왔다"고 고백했다.

한편 영국에선 존 메이저 전 총리의 부인 노마 메이저가 총리관저에 입주한 후에도 "나는 차를 만들 때 티백을 두번 우려낸다"고 말해 수수함과 검소함의 상징으로 사랑을 받기도 했다.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