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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살롱] 흥행의 마술사? <암살> 최동훈 감독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충무로 영화판을 대표하는 ‘흥행불패 신화’ ... 한국 영화사상 두번째로 두 작품 동시 1천만 관객동원

<도둑들>에 이어 <암살> 또한 천만 관객의 기록 수립을 눈앞에 둔 최동훈 감독은 명실공히 ‘충무로 흥행불패’ 신화를 써내려간다. 영화 <암살>에 대해 최 감독은 “트라우마가 있는 역사를 위로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게 영화의 서사라고 생각한다”며 “지루하거나 지나치게 우습지 않게 만드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잠시 머뭇대는 순간이 있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 앞서 가슴에 전해지는 울림을 스스로 갈하는 시간이다. 남은 팝콘 봉지와 음료수를 들고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이 툭툭 내뱉는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들릴 때가 많다.

“감동적이네요.”

“아, 하정우 너무 멋있지 않니?”

“<도둑들>을 만든 그 감독이라고?”

영화 <암살>의 개봉일인 7월 22일. 평일인데도 만원을 기록한 서울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의 관객들도 그랬다. 극장을 빠져나가면서 배우와 영화, 감독에 대해 얘기했다.

‘흥행의 마술사’로 불리는 최동훈 감독의 실험은 이번에도 대성공인 듯하다.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조승우, 김해숙 등 극장가의 흥행 보증수표로 꼽히는 스타배우들을 내세운 <암살>은 필연인지 우연인지 광복 70주년인 8월 15일 오전 관객 수 1천만명을 돌파했다. 개봉 25일 만의 기록으로 역대 최단기간이기도 하다. 이로써 영화사상 역대 두 번째로(윤제균 감독‘해운대’ 1145만명, ‘국제시장’ 1425만명) 1천만 감독이 되며 명실상부 최고의 흥행 감독 반열에 올랐다.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에서도 단연 최고 기록이다.

총 200억원이 넘는 제작비가 들어간 대작으로 손익분기점도 일찌감치 넘어섰다. 메가폰을 잡은 최동훈(44) 감독은 데뷔작인 <범죄의 재구성(2004)>에서부터 <타짜(2006)><전우치(2009)><도둑들(2012)><암살(2015)>에 이르기까지 다섯 편의 작품을 모두 흑자로 기록한 보기 드문 감독이다. 그에게 ‘충무로 흥행 불패’란 수식이 따라붙은 이유다.

영화 <암살>은 1933년 상하이와 경성(京城)을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다. 친일파 암살작전을 둘러싼 독립군과 임시정부 대원, 그들을 쫓는 청부살인업자들의 엇갈린 선택과 예측 불가능한 운명을 그렸다. 마침 한일 양국 사이에 냉기류가 흐르는 요즘이라 영화 속의 장면장면이 더 또렷하게 되살아나는 듯하다. 일제 강점기의 분위기를 살린 명치정 거리(현명동), 미츠코시 백화점(현 신세계 백화점), 경성 거리 등의 배경 연출이나 배우들의 명연, 역사적 맥락이 어색하지 않게 녹아들어 오락성과 작품성을 함께 인정받았다.

“배우가 영화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봐요”

영화 <암살>은 1933년 상하이와 경성을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다. 친일파 암살작전을 둘러싼 엇갈린 운명을 그리며 오락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7월 23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제작사 ‘케이퍼 필름’에서 최동훈 감독을 만났다. <암살> 개봉일 바로 다음날이었다. 첫날 관객 50만 명. 최 감독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최 감독은 “(이 같은) 흥행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미 천만 관객을 끌어 모았던 전작 <도둑들>의 부담감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사회가 끝난 뒤 배우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굉장히 좋아했어요. 촬영할 때 시나리오가 있고, 감독의 의도가 있잖아요. 배우들도 자신만의 그림이 있고요. 그게 잘 합치돼야 해요. 촬영이 끝날 때는 같은 영화를 찍었다고 느껴야 해요. 그래서 서로 맞춰가려고 대화를 많이 하죠. 이번 영화에선 ‘아, 우리가 한 영화를 찍었구나’ 하는 느낌이 팍 왔어요.”

혹시 <암살>을 촬영하면서 배우들과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하세요?

“물론이죠. 이정재 씨가 촬영현장에 나타나는 순간, 바로 느꼈어요. ‘아, 염석진(이정재 분)이다’ 하고. 그런 느낌을 <타짜> 때 김윤석 선배한테도 받았거든요. 털털한 사람이 점퍼랑 청바지만 입고 앉아 있는데 스태프들이 무서워서 말을 걸지도 못했죠. 진짜 ‘아귀(<타짜>에서 김윤석 분)’가 내 옆에 있구나 싶더라고요. (이)정재 씨의 등장도 그랬어요. 이 사람은 (영화에) 몰입해서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전지현은 (안옥윤의 등장 첫 장면에서) 수갑을 차고 걸어와서 ‘내 총’ 하고 말하는데, 딱 이거다 싶더라고요. 하정우 씨도 첫 촬영이 미라보에서 안옥윤과 우연히 만나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찍었는데, 이 영화는 이런 영화구나 하고 느꼈어요. 저는 항상 배우가 한 영화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다른 배우가 했더라면, 다른 온도와 다른 향기를 냈겠죠? 그런 걸 볼 때가 제일 행복하죠.”

이 영화를 만들면서 중점적으로 고려한 점은요?

“여러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누군가는 명예를 지켜가며 이 일을 힘들게 해나가고, 다른 쪽에는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거죠. 또 저쪽에는 이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외부인이 있고요. ‘조선이 사라진 지가 언제인데 언제까지 조선 타령이냐’고 하는 식의…. (이번 영화도) 외부인이 점점 이야기의 중심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이야기의 중심에 있던 변절자는 점점 더 외곽으로 밀려나고요. 그런 구도를 꿈꾸었어요. 운명적으로 얽히고 설키게 되는….”

마침 올해가 광복 70주년이 되고,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 되는 해인데 영화를 찍으면서 혹시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셨나요?

“아니요, 그렇게 치밀하게 생각하진 않아요.(웃음) 원래 9년 전에 하려던 영화였어요. <타짜> 끝나고. 이 영화가 <타짜>랑 약간 비슷한 부분이 있어요. 승부사인데 외로운 사람의 쓸쓸한 정서가 있거든요. 그래서 영화 끝내고 이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데 잘 안 써지더라고요. 공부 안 하려고 영화감독이 됐는데 공부를 해야 하는 거예요.(웃음) 책도 보고 그랬지만 이야기가 방대하고 한 손에 딱 들어오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놔두자, 묵혀두면 언젠가는 뭐가 와서 내 목덜미를 잡겠지, 뭐’ 하고 그냥 던져뒀어요. 그런데 <도둑들>을 찍고 나서는 ‘더 늦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 감독은 이 영화를 찍으면서 영화의 트레이드마크랄 수 있는 웃음기를 걷어내려 했다고 한다. <도둑들>과 다른 지점이 여기에 있다.

“씹던 껌! 내가 고기야?”

“이게 진짜 똥 닦던 걸레를 입에 처물었나, 어디서 어른한테 씹던 껌, 씹던 껌. 나이도 어린 년이 그냥 굽히고 배우는 맛이 없어, 그냥.”

“근데, 왜 별명이 팹시에요?”

“톡 쏘는 게 성격이 X같은가 보지?”

“우울하고 험난한 시대, 까불고 싶지 않았어요”

<도둑들>의 흥행요소 중 하나는 초호화 캐스팅이었다. 이번 영화에서도 유명배우들의 명연이 펼쳐지며 최동훈 감독의 배우 캐스팅에 관심이 쏠렸다.

<도둑들>에서 툭툭 던지듯 억세고 입에 감기는 듯한 대사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암살>의 다소 느린 ‘속도’에 나른함을 느꼈을 법하다.

감독님 영화의 특징을 말하라면 짧고 빠르면서 위트 있는 대사였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번엔 느긋한 침묵이랄까, 그런 느낌이 있는데 그것도 의도한 것이었나요?

“<범죄의 재구성>을 찍고 나서 좀 다르게 찍고 싶어서 <타짜>를 찍었고, 이번에도 그랬어요. <도둑들>하고 다르게 찍고 싶었던 것 같아요. 스토리보다 사람에게 더 집중하는 영화를 찍고 싶었죠. 캐릭터에 더 가까이 가고 싶었거든요. 옛날 같았으면 대사 끝나면 바로 넘어갔을 텐데, 정지나 정적을 넣게 된 것도 그래서예요.”

대사가 없는 순간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이 쉽지 않을 거 같아요.

“어렵죠. 대사로 표현할 수 없는 장면들을 찍어보는 것이 정말 중요했어요. 한번 해본 거죠. 그 역시 ‘재밌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고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재미의 영역은 매우 넓으니까요. 송곳으로 꽂느냐 아니면 주걱으로 훑느냐 하는 문제인 거죠.”

9년 전, 최 감독이 독립군 이야기를 마음에 품게 된 건 우당 이회영 선생의 책을 읽고 나서였다고 한다. 이회영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구한 말의 독립운동가다. 최 감독은 이 책에서 자신이 갖지 못한 비범함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우당 이회영 선생이 이항복의 후손인데, 서울에서 굉장히 큰 부자였대요. 나라가 없어지자마자 모든 재산을 팔아 치웠는데, 지금 돈으로 치면 대략 600억 정도 되는 금액이었거든요. 식솔들을 모두 이끌고 간도로 가서 만든 게 신흥무관학교에요. 그것도 전 재산을 다 쏟아부었어요. 범인에 불과한 저와 비교되는 순간이었죠.”

이번 영화는 역시 해피엔딩은 아니었어요. 실제 역사가 배경이 돼서 그런지, 분위기가 무겁게 느껴졌어요.

“그 시대가 어둡고 암울했죠.”

이 영화의 구상을 처음 싹 틔운 것은 언제인가요?

“제가 국문과 출신이라 대학시절 1930년대 소설을 많이 읽었어요. 그래야 학점을 줬거든요.(웃음) 그런데 당시 소설 속에는 레지스탕스에 대한 게 없었어요. 검열의 시대였잖아요. 그때가 호기심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레지스탕스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하고 계속 찾을 수밖에 없었어요. 당시 일제가 가장 잡고 싶어하던 의열단 약산 김원봉에게 내건 상금이 100만원이었답니다. 당시 만주철도에서 조선호텔을 짓는데 120만원을 썼던 시대였거든요. 인터넷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오사마 빈 라덴 이후 세계적인 액수’라고 하더라고요. ‘과거의 사실, 하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차츰 잊혀지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시작이라는 게 어느 날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해야지’라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차곡차곡 관심이 쌓였던 것 같아요.”

“친일파냐 아니냐는 감독 아닌 관객이 판단할 몫”

극중 안옥윤(전지현 분)에 대해 최 감독은 “한 여성이 무거운 총을 들고 바닥에서 구르고 힘에 부친 듯 절박하게 싸우는 모습을 원했다”고 말했다.

영화감독으로서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을 소재로 다루기가 꽤나 부담스러웠을 것 같아요. 근현대사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이 각기 다르잖아요. 자칫 (영화를) 경쾌하게 끌고 가다가는 우스워질 거 같고, 반대로는 지루해질 수도 있고요. 다행히 거리감을 잘 좁힌 것 같은데 무엇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셨나요?

“맞아요, 정말 우울하고 험난한 시대였어요. 그래도 사람들은 살아가요. 그런데 모두들 낭만적으로 살고 싶어하고 행복하고 싶어해요. 마치 그 시대의 테마가 데카당스(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역으로 전파된 퇴폐적인 경향 또는 예술운동)인 것처럼요. 그런데 실제로 그랬을까는 의문이죠. 그래서 함부로 까부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플롯을 짤 때 가장 신경 쓰는 건 ‘과연 이게 재미있을까’라는 질문이에요. 재미의 영역은 넓어요. 경쾌한 것도 재미있지만, 가다가 한 번씩 서는 것도 재미있거든요.”

염석진이 독립운동가였다 변절자가 되는 대목도 오묘하게 걸쳐있잖아요? 역사에서 ‘친일파는 나쁘다’라고 배웠는데, 한 인간의 모습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지 않고 경계를 좀 흐려놓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논란이 생길 거라는 의견도 있어요.

“(친일파 논란은) 파헤쳐서 더 보여줄 부분이기는 하죠. 하지만 염석진은 아주 많은 사람이 투영된 상징적인 존재에요. 감독이 미리 가치 판단을 해버리면 관객이 끼어들 틈이 없잖아요. 그런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죠. 실제 법으로 처단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많아요. 일종의 괴물 같은 사람들이죠.”

관객의 만족도를 높이려면 일반적으로 권선징악적인 플롯이 필요하지 않나요?

“물론 관객의 만족도는 중요하죠. 그런데 역사는 그렇지 않아요. 절대 우리 생각대로 되지 않고 꼭 트라우마가 있어요. 이야기는 힘든 삶을 재미있게 해주거나 보듬어 안아주는 것이에요. 역사는 그렇게 (비극적으로) 됐지만 서사로 약간 위로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만일 라스트 신이 없었다면 이 영화를 안 했을 거에요. 활극에 그쳤을 수도 있거든요.”

최동훈 감독의 영화가 ‘흥행보증수표’라는 수식어를 달 수 있었던 가장 요소를 꼽는다면? 역시 최동훈의 영화라면 냉큼 달려와주는 배우들이 있기 때문 아닐까? 관객 입장에서는 ‘저 배우들을 어떻게 한자리에 모았을까’ 하는 감탄이 나오는 것도 그의 영화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볼거리다.

배우 캐스팅은 직감에 의해서 일어나는 건가요?

“그렇죠.”

혹시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염두에 둔 배역이 있었나요?

“이 영화에는 반드시 여자가 나와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여자가 총을 들고 만주에서 여기로 와야 되는 거야, 그 정도였어요.”

그래서 안옥윤(전지현 분)이 등장했군요?

“단순해요. 남자만 있는 것보다는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독립운동이라는 레지스탕스 활동이 굉장히 험하고 터프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잖아요. 통념상 남성의 세계고요. 그런 세계로 한 여성이 들어와서 아주 힘겹게, 절실하게 일을 해내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도둑들>의 ‘예니콜(전지현 분)’처럼 다이아를 멋지게 훔쳐오는 게 아니라는 거죠. 한 여성이 무거운 총을 들고 바닥에서 구르고 넘어지면서 힘에 부친 듯 절박하게 싸우는 것, 그런 모습을 원했어요. 만약 남자들만 나왔다면 너무 흔하고 익숙한 액션이 됐을 것 같아요.”

“안옥윤(전지현 분)의 역할에 기대 컸다”

최동훈 감독은 <타짜>가 끝난 뒤 <암살>의 시나리오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두 영화는 쓸쓸하고 외로운 승부사의 정서를 다뤘다는 점에서 닮았다.

저는 오히려 배우들의 캐릭터가 겹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전지현 씨가 전혀 다른 연기를 시도했지만 사실 기존의 이미지가 워낙 강하잖아요. 그래서 썩 잘 어울리는 옷은 아니라는 불안감이 관객들 사이에 있었던 것 같아요.

“뭐라고 해야 할까, 잘할 거란 확신? 많은 사람이 전지현에 대해 아주 밝고 명랑한 모습을 많이 봐 왔죠. 하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뭔가가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배우에 대해 호기심을 계속 갖는 것이 감독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요. 안옥윤은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여자에요.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그 역할을 (전지현은) 100%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역할을 대신할 배우가 상상이 잘 안 가요. 처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시나리오 작업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나요?

“그렇죠. 염석진도 정재 씨처럼 표현력이 훌륭하고 열정적인 사람이 해주기를 바랐죠. 엑스트라 100명을 두고 찍는 건데, 오케이 하는 순간 엑스트라들이 일동 박수를 쳤어요. (이정재는) 나이 43세에 20대와 60대를 표현한 배우에요. 몸무게를 68㎏까지 감량했거든요. 그 장면 하나를 위해서 말예요. 내가 배우를 너무 괴롭힌 것 같아요.”(웃음)

하정우 씨와는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건데, 어땠나요?

“하정우는 정말 우아한 배우에요. 친근한 느낌은 있죠. 그게 다가 아니라 우아하고 멋있는 향기가 있어요. 특히 저는 하정우의 시선이 좋아요. 흔들리지 않고 응시하는 힘이 있어요. 시나리오를 쓰면서, ‘아, 드디어 이번에 하정우랑 하는 건가?’라는 즐거운 상상도 하면서 썼어요.”(웃음)

가장 공을 들였거나 시간이 오래 걸린 장면이 있다면요?

“액션 장면이죠. 차는 1930년대 차니까 안 굴러가지, 걸핏하면 서고.(웃음) 총도 다 30년대 총이니까 안 나가고. 너무 ‘늙은’ 소품들을 쓴 거예요. 늘 신경 쓰이는 것은 배우의 안전이에요. 어느 날 전지현 씨 손에 파랗게 뭔가 묻어있길래 ‘왜 그래’ 물었더니 ‘멍이에요’ 그러는 거에요. 그래서 ‘멍들면 어떻게 해’ 그랬더니 ‘뭐, 평생 가나요?’ 그러면서 넘기더라고요.”

이번 영화에서 감독으로서 애착을 갖는 장면이나 대사가 있다면요?

“하와이 피스톨이 안옥윤에게 ‘두렵지 않나?’라고 묻는 장면이 있어요. 거기에 안옥윤이 대답해요. ‘두려워.’ 그것이 이 영화의 정체라고 생각해요. 몇 초간 하와이 피스톨을 빤히 쳐다보다가 ‘두려워’라고 한마디를 던지는 지현이 표정을 보며 전율이 돋는 거예요. 별 대사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둘만의 텔레파시가 통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멜로라기보다는 심퍼시(Sympathy) 같은 느낌? 적당한 단어가 없는 것 같은데… 연민이라고 하기엔 좀 다른 의미 같기도 해요. 동질감이라고 해야 하나?”

최동훈 감독은 ‘시도해 보지 않은 재미있는 영화’에 대해 갈증을 갖고 있는 듯했다. 그 해갈은 영화를 통해 전달된다. 그래서 늘 불모지에 있는 소재를 찾는다. 그의 영화가 관객들에게 늘 ‘새롭게’ 비치는 까닭이다.

<암살>에서 최 감독은 비애의 역사에 비어있는 틈을 향해 카메라 줌을 당겼고, 음지에 있던 잊혀진 한 줄의 역사는 1천만이 넘는 관객에게 새롭게 각인됐다. 약산 김원봉의 마지막 대사인 “잊혀지겠죠, 미안합니다”라는 한마디는 독립을 위해 싸운 수많은 열사를 향한, 잊혀진 영웅들을 향한 후손들의 인사라고 할 수 있다.

다음 영화에 그는 또 어떤 실험을 할까. 차기작이 궁금해졌다. “지금은 <암살>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하고 싶은 게 뭔지 기다리고 있는 중이고요. 아마 몇 달 지나면 또 몸이 근질근질해지겠죠? 사실 누가 좀 시나리오를 줬으면 좋겠는데.”(웃음)

- 글 박지현 월간중앙 기자 / 사진 이원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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