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사진에 스민 색, 살짝 비튼 여유 아닐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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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사진가 공필희씨는 작고 여린 것들에 대한 애정이 담긴 작품 앞에서 “이들을 닮고 싶다”고 했다.

덜렁 오징어 한 마리가 화면 중앙을 차지했다. 엉금 기어갈 듯 다리를 쫙 펼친 게도 있다. 금붕어 두 마리, 뿌리가 다 드러난 난초, 장미 한 송이, 모두 적막하다. 작고 여리고 투명한 것들이 쓸쓸하게 모여 있다. 사진가 공필희(60)씨는 가슴 깊은 곳까지 전파를 보내주는 꽃과 어류를 스튜디오에 모아놓고 끈질기게 바라보며 찍었다. 손으로 만지기보다 눈으로 어루만지는 일이었다.

 “사진을 잘 찍고 잘 뽑고 싶다는 마음이 지금까지 사진작업을 버리지 못하게 했어요. 언젠가는 더 잘 찍고 더 잘 만들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계속하고 있죠.”

 12일까지 서울 도산대로 갤러리 엘비스(LVS)에서 개인전을 여는 그는 프랑스 파리 에콜 MJM 사진학과 시절부터 몸에 익힌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한다. 찍고 인화하는 전 과정을 혼자서 감당하기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작품 수도 몇 점 안 된다. 정물과 소곤소곤 대화하고, 풍경을 앞에 놓고 오래 생각하는 그에게 흑백 필름 작업은 덤덤하고 심심한 친구가 된다. 삼라만상이 발산하는 담백하고 겸손한 체취와 정조를 언젠가 제대로 드러내 보겠다는 게 꿈이다.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은 ‘숨은 색(色) 찾기’ 놀이를 즐길 수도 있다. 흑백 사진에 있는 듯 없는 듯 배어든 색은 그가 유학시절에 시도했던 ‘컬러링’을 되살린 것이다. 특수 색연필로 창문 몇 개, 가로등 한두 개 등을 슬쩍 색칠한 묘한 대비가 과거와 현재를 뒤섞고 공간을 초현실적으로 변모시킨다.

 “재미로 색을 넣어 보았는데 힘들어서 더는 못할 것 같아요. 흑백의 견고한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살짝 비틀어 틈을 만드는 여유, 그게 삶이 아닐까 싶어서.”

글·사진=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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