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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음산책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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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러스트=김회룡]
혜 민
스님

우리는 왜 일을 할까. 먹고살려니 어쩔 수 없어서? 돈을 벌어야 내 가족이 생활할 수 있어서? 물론 당연한 말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생계 해결이 중요하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오직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수단으로만 여겨졌을 땐 중요한 문제가 하나 발생한다. 바로 그 일이 하기 싫어진다는 것. 왜냐하면 일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고 일의 결과로 얻는 돈만이 중요해지면, 일은 그야말로 죽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고된 노동이 되고 만다.

그래서 월요일 아침이 돌아오는 것이 두렵고, 일을 하면서도 퇴근 시간만 기다린다. 또한 회사에 큰 프로젝트가 생겨 일을 분담해야 할 때, 어떻게 하면 내가 남보다 적게 일할지만 머리를 써 계산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일을 하는 이유가 그 일이 나에게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인 경우다. 예를 들어 내가 하는 일이 나 개인을 초월해 사회를 밝히고 많은 이를 이롭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이다. 다른 일을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도 있겠지만 돈보다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그 일이 더 좋은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의미만을 강조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과 일할 때, 나의 ‘의미’가 동료들의 ‘의미’나 ‘목적’과 충돌할 수도 있다. 돈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이 의미 있는 일이 후순위로 밀릴 수도 있고,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혹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으니 다른 것쯤은 희생하라고 강요를 당하기도 한다.

 미국 대학에서의 교편을 내려놓고 서울 인사동에 힘들어하는 분들을 위해 ‘마음치유학교’를 만들어 운영하다 보니 ‘일의 의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중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함께하는 분들이 재미와 보람을 느끼며 일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돈보다 의미가 더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그렇다고 해서 같이 일하는 분들께 의미만을 강요할 순 없다. 최근 알게 된 바로는 몇몇 유명한 분들을 제외한 우리나라 대부분의 심리상담가들이 박봉으로 생계가 그리 여유롭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의미 있는 일이니 어려운 이들을 위해 무조건 봉사해 달라고 할 수만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지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돈이나 의미 말고도 일을 하는 데 중요한 다른 이유들이 또 존재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어떤 이들은 돈이나 의미보다도 직장 안의 자율성을 더 중시한다. 일을 하며 윗사람의 간섭보다 자신의 능력을 펼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일하는 과정 중간중간마다 상사의 간섭이 있다면 주인의식은 사라지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상사의 스타일대로 일을 ‘해주는’ 것에 머물 수 있다. 자율성의 중요성을 인식한 구글 같은 회사가 직장 내 20%의 시간을 자신이 선택한 일을 하도록 정한 것이 좋은 예다.

 또 다른 이들은 자율성과 함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은 일을 반복해서 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변화 없이 위에서 시키는 일만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마치 내가 큰 기계의 부속품이 된 듯해 일하는 재미를 찾을 수 없다.

반면 자신의 아이디어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하면 일은 정말 재미있어진다. 전에 근무했던 미국 대학의 장점이 바로 이 점이었다. 다른 대학에 비해 연봉은 좀 낮아도 교수들에게 본인들이 가르치고 싶은 과목을 창의적으로 만들어 수업하라고 권장한다. 그러니 한 학기 한 학기가 새롭고 다채로운 수업들로 채워진다.

 마지막으로, 지금 하는 일 안에 자기 성장의 기회 여부가 그 일을 지속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일을 하면서 내가 배우고 성장하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 일은 단조로워지고 삶은 정체된 것처럼 느낀다. 성장을 위해서는 일이 너무 쉽고 익숙해서도 안 되고 기존에 했던 것만 반복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직장 안에서의 교육의 기회도 중요하고, 직원이 다소 다른 분야의 일을 하고 싶다고 요청한다면 융통성 있게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일을 하는 이유는 개인마다 천차만별이다. 일을 하며 타인에게 인정을 받고 자존감을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일을 통해 삶의 활력을 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돈이 만능이라고 여기는 자본주의 세상에 살고 있지만 돈이라는 수단의 가치가 아닌 일을 하는 다른 소중한 이유를 하나 찾아보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혜민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