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진 "할아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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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노장진에게 '가족'이라는 단어는 특별하다. 노장진은 가정 불화 탓에 어릴 적부터 부모와 떨어져 살았다. 할아버지 노흥섭옹이 충남 공주군 조평리 산골마을에서 그를 키웠다.

물론 조부의 양육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천부적으로 강한 어깨 덕분에 공은 잘 던졌지만 내성적이고 감정을 자제하지 못했다. '마운드의 풍운아'라는 별명처럼 복잡한 야구인생을 살았다.

대학에 들어가기로 했다가 야구팀 선배와 싸운 뒤 포기했고, 한화에 입단해서는 감정을 자제하지 못해 감독의 신임을 잃었다. 음주운전으로 구설에 올랐고 술 마시고 늦잠을 자다 훈련시간에 늦어 선배들에게 심한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변해갔지만 할아버지는 손자를 포기하지 않았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았다. 그 그늘 속에서 노장진은 결혼했고 아이를 낳으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1999년 삼성으로 둥지를 옮긴 노장진은 지난해 마무리 투수로 팀을 첫 우승으로 이끌었고 연봉 2억5백만원을 받는 대선수로 성장했다.

노장진이 행복을 느끼기 시작한 순간 할아버지는 할 일을 다했다는 듯 떠나갔다. 지난 10일 "장진이가 쓰던 야구공과 배트.글러브를 관 속에 넣어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 할아버지는 92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13일 노장진은 대구 현대전에서 다시 마운드에 섰다. 장례를 치르느라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해 컨디션이 나빴지만 "네가 야구 잘 하기를 하늘에서 기원하겠다"던 할아버지의 마음은 고스란히 가슴 속에 담겨 있었다.

5-3으로 쫓긴 8회 2사 1, 2루 위기에서 등판한 노장진은 2와3분의1이닝 동안 2안타, 1실점만을 허용하며 팀의 5-4 승리를 지켰다. 노장진은 이 세이브를 '할아버지가 주신 선물'로 여기고 있다.

한편 홈런기록 3백개에 세방을 남겨둔 이승엽은 상대 투수들의 심한 견제 속에서 볼넷 3개를 얻고 1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한화는 SK에 11-3으로 대승을 거둬 4연승했다. 한화 선발 이상목은 9승2패로 다승 단독선두에 올랐다.

잠실에서는 기아가 LG에 5-1로 이겼지만 기아의 간판 이종범은 3회초 상대 투수 이승호에게 왼쪽 무릎을 맞았다. 큰 부상은 아니지만 타석에서 발목이 제대로 안 돌아 한두 경기 결장은 불가피하다.

이태일·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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