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학구조개혁, 국가경쟁력 강화 위해 피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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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우리나라 고등교육기관의 양적 팽창은 임계점을 넘어섰다. 전국의 대학은 4년제 199개와 전문대 138개를 합쳐 337개나 된다. 그런데 국제 경쟁력은 형편없다. 세계 50대 대학은 서울대 한 개뿐이다. 1996년부터 설립 기준이 ‘허가제’에서 기본 요건만 보는 ‘준칙주의’로 바뀌면서 교육의 질 저하가 가속화됐다. 운동장과 건물만 있는 부실 대학이 곳곳에 들어섰다. 그래도 고교 졸업생이 넘치고 대학 진학률이 세계 최고인 80%까지 치솟아 대학은 배가 두둑했다.

 그런 대학들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 당장 2018년부터 고졸자 수가 입학 정원(4년제+전문대 56만 명)을 밑돌고 2023년엔 40만 명으로 급감한다. 고졸자가 몽땅 진학해도 16만 명이 모자란다.

 이런 상황을 방관하던 교육부가 제 발 저린 듯 칼을 빼 들었다. 어제 2023년까지 정원 16만 명을 줄이겠다며 내놓은 1단계 대학구조개혁 평가 결과가 그것이다. 전국의 대학을 A~E 5등급으로 나눠 최상위 51곳을 제외한 대학들에 2년간 정원을 최소 4%(B등급)에서 최대 15%(E등급)까지 감축하라고 통보했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대학에 연간 수백억원씩 배분되는 재정지원 사업에서 빼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4만7000명을 줄인 뒤 두 번 더 감축해 목표를 채운다는 방침이다.

 이번 평가의 핵심은 하위 등급인 D(53개)·E(13개) 66곳에 대한 제재다. D등급은 내년부터 신규재정 지원과 국가장학금·학자금 융자가 제한된다. E등급은 사실상 퇴출 선고가 내려졌다. 국고는 물론 신입생 장학금과 학자금 융자가 전면 끊긴다. 이들 대학은 ‘부실’ 낙인이 찍혀 당장 9일 시작되는 수시모집부터 타격을 받을 것이다.

 교육부의 일방적 구조개혁엔 문제점도 적지 않다. 정원 감축의 법적 근거도 없이 재정지원을 앞세워 전국 대학에 일률적인 감축 비율을 할당했다. 잘하는 곳은 키워주고, 부실한 곳은 솎아내야 하는데 수도권·지방 형평 맞추기에 급급했다. 대학의 학문적 가치와 자율성도 무시했다.

 향후 대학 개혁은 이런 미비점을 보완해 더 실효성 있게 진행돼야 한다. 인재 양성의 산실인 대학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고 우리의 미래여서다. 무엇보다 부실 대학이 세금으로 연명 못 하도록 해야 한다. 일부 부실 대학에 전년도 사업이란 명분으로 산소 호스를 꽂아주는 게 말이 되는가. 특히 정치권은 강제 퇴출 근거가 담긴 ‘대학구조개혁법안’을 조속히 통과시키기 바란다. 설립자의 잔여재산 귀속 비중을 제한해 한시적인 퇴로를 열어줄 필요가 있다. 내년 총선 표 눈치만 볼 때가 아니다.

 등급별 대학 명단도 확실히 공개해야 한다. ‘학자금 대출 제한’식의 깜깜이 발표를 누가 알아보겠는가. 상세 명단과 내역을 밝혀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해줘야 한다.

대학도 바뀌어야 한다. 글로벌·디지털 시대에 맞는 학사 개편과 전공 개발, 그리고 통렬한 의식 전환이 절실하다. 그래야 교육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생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구조개혁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