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뉴스도 한단계 가공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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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날 중앙일보는 권력에 대한 비판 강도는 좀 약해도 문제의 핵심을 조목조목 제대로 짚고 정보와 읽을거리가 많은 신문이란 얘기를 들었다.

'재벌신문'으로서의 한계를 철저한 취재와 수용자의 눈높이에 맞추는 가공 노력으로 커버했다는 평가였다. 1999년 이후론 그 태생적 한계를 벗어났는데도 정보가 미진하고 가공 노력도 부족해 보이는 기사들이 요즘 적지 않게 눈에 띈다.

*** 눈길 끄는 景氣관련 르포기사

경쟁지 10일자 3면에는 서울의 재래시장 다섯 곳의 르포기사가 실렸다. 경기 침체로 매상이 급격히 떨어지고 저녁 일찌감치 문을 닫는 황량한 시장 분위기를 잘 전하고 있다.

그 옆에 백화점 매출도 4개월째 마이너스란 통계청 발표 기사를 곁들였다. 물론 중앙일보도 같은 날 경제섹션 1면 톱박스를 비롯해 통계 숫자와 관계자 멘트 위주의 경제기사로 경기침체와 소비위축을 여러 차례 보도했다.

이런 식의 보도가 경기침체의 전반적인 그림을 왜곡되지 않게 보여주는 방법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역시 독자에 대한 소구력이란 측면에서는 재래시장 르포기사가 훨씬 마음에 와닿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중앙일보를 포함한 대부분의 신문은 11일자 1면에 패트리엇 미사일의 도입을 다시 추진한다는 기사를 크게 실었다. 그런데 유독 조선일보는 이 기사를 한 단계 가공해 '한국형 미사일 방어망 추진'이란 주제목 아래 패트리엇.이지스함.첨단 레이더로 방어망을 구성한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 기사에도 국방부 차영구 정책실장의 말로 자체 미사일 방어능력 확보가 시급하고 패트리엇은 그 여러 방안 가운데 하나라는 내용이 들어 있긴 하다.

12일자 문화일보는 1면 톱기사로 '북핵 국제공조'에서 한국이 불투명한 대북입장 때문에 소외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 소외의 근거로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 회의에 앞서 미.일 외무차관 회담에서 5자회담안을 미리 결정해 버렸고, 북핵 문제 등을 협의한 미.일.호주 3국 회의와 서방 10개국 회의에 한국은 초대받지 못했으며, 한국이 끼지 못한 여러 회의에서 대북 강경책이 논의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중앙일보도 보도한 이 개별 사실들을 한데 꿰어 차원이 다른 기사를 가공해 낸 노력을 눈여겨 볼 만하다.

12일자 경쟁지 9면에는 미선.효순이 1주기를 맞아 그들의 부모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딸의 죽음을 잊지 않고 추모해준 데 대해 국민께 고맙고 한편으로는 부담스럽다, 과격한 반미는 원치 않는다, 이제 그만 했으면 싶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의 밑거름이 되기 바란다는 등 사려 깊은 얘기가 많았다. 원래 시의에 맞는 이런 기획에는 중앙일보가 가장 재빨랐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밖에 지난 2주간의 기사를 보면 13일자 타지에는 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이 대통령을 비판한 언론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며 "대통령이 언론을 죽이자고 생각하면 방법이 얼마든지 있고 발톱도 있지만…" 운운하는 기사가 나왔으나 중앙일보에는 보이지 않았다.

*** 여중생 1주기 기획물 아쉬워

3일자 경쟁지는 '양심적 병역 거부'교육용 다큐멘터리 제작에 국가 기관인 인권위가 제작비 1천3백만원을 지원한 것을 문제삼는 기사를 보도했으나 중앙일보엔 사실보도 자체가 빠져 다음날 타지 보도를 바탕으로 사설을 실었다.

6.10 만세운동 77주년을 기해 공개된 조선조 마지막 황제 순종의 '어장의 사진첩'이 9일자 경쟁지들에는 문화면 전면 특집으로 보도됐으나 중앙일보엔 빠졌다. 평소 현대사 발굴과 자료 축적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 온 중앙일보답지 않다.

반대로 12일자 문화면에는 20년 전 월북한 한 철학자의 저서 개정판이 재출간됐다는 기사가 톱박스로 크게 실려 이 신문이 중앙일보가 맞나 하는 황당한 느낌을 받았다.

성병욱 중앙일보 고문.세종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