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똥 화로에서 향내 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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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바이스(齊白石.1864~1957)는 중국 근.현대 미술계에서 첫 손에 꼽는 거장이다. 중국 근대미술의 서막을 연 화가로 1953년에 중국미술가협회 주석이 되었다. 지난해 가을,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중국 근.현대 오대가전'에 선보인 치바이스의 작품은 말로만 듣던 명성을 확인하게 해줬다.

후배인 리커란(李可染)이 "가슴에 삼라만상을 품고, 손끝으로 조화를 이루는 경지에 오른"이라고 기릴만한 격조와 기량이 그림에서 뿜어져 나왔다. 과연 그는 구십 평생을 자연을 보고 마음에 담은 뜻을 종이 위에 자유자재로 편 '중국의 피카소'였다.

이 책은 치바이스가 일흔 한 살 되던 해부터 문하생 장치시(張次溪)에게 구술한 자서전이다. 17년에 걸쳐 받아 적게 한 회고담은 한 편의 소설같다. 가난한 집에서 병약하게 태어나 목수일로 밥벌이를 시작한 그는 "입에 풀칠부터" 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도 스스로 그림에 대한 재능을 일깨웠다.

얼마나 먹을 것이 궁했는지 "밭에 토란이라도 있으면, 어머니는 나더러 그것을 캐어 집에 가서 쇠똥에 구워 먹으라고 하셨다"고 기억하는 화가는 뒤에 토란을 그릴 때마다 그 광경을 떠올리고 시를 한 수 지어 붙였다. "쇠똥 화로 불 지피면 향이 절로 풍겨난다네." 치바이스는 그림을 팔아 부모 봉양하고 처자를 거두게 된 뒤에도 궁핍했던 과거를 잊지 않았다. 그가 그린 소재들은 서민들 생활 속에 익숙한 것들이었다.

치바이스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호미며 삼태기는 일하는 백성들이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생계 도구요, 그가 즐겨 그린 배추와 죽순은 가난한 이들의 밥상에 자주 오르는 반찬이었다. 제자 하나가 배추를 잘 그리는 비법을 묻자 치바이스는 "네 몸에는 소순기(蔬筍氣:푸성귀나 잡풀의 성분)가 없는데 어찌 나와 똑같은 그림의 효과를 낼 수 있겠느냐"고 했다. " 말을 하려면 남들이 알아듣는 말을 해야 하고, 그림을 그리려거든 사람들이 보았던 것을 그려야 한다"는 독학으로 화법을 깨우친 그의 화론 아닌 화론이었다.

"선통 2년(1910)에 48세. 집으로 돌아온 뒤 학문이 너무 형편없음을 통감하고 날마다 고문과 시사(詩詞)를 읽었다"는 구절이 보여주듯, 치바이스는 평생을 쉬지 않고 공부하고 그렸다. "새나 벌레는 늙어서도 일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며 "하루도 헛되이 지내서는 안된다"고 다짐한 시 구절은 노동자와 인민의 곁에 선 화가상을 보여준다.

그는 팔순에 접어든 뒤 대문에 "관료들에게는 그림을 팔지 않음"이라고 써붙였다. 1937년 베이징이 일본군에 함락된 뒤였다. "적군의 통역을 맡은 작자들" "인민의 피를 팔아먹는 벼슬아치들"을 쥐로 묘사한 노화가는 "쥐들아, 쥐들아, 어째 그리 많으냐! 어째 그리 시끄러우냐!"고 통탄했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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