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방비 없어 자물쇠 잠긴 노인정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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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예전에는 동네어귀의 큰나무밑 응달이나 물가의 정자 또는 겨울철 사랑방이 노인들이 모여 쉬며 얘기를 나누는 곳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변하면서 특히 도시에서는 이런 모임의 장소가 사라져버리고 노인정이란 이름으로 공립 또는 사설건물이 들어서 이제는 각동에 한곳 정도씩 있는 형편이다.
이럽게 노인정이 마련되었다는 것은 노인들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수도 있으며 한편으로는 그만큼 노인들이 함께 모여서 시간을 보낼만한 장소가 줄어둘었다는것을 나타내주기도한다.
노인정은 외릅고 쓸쓸한노인들에게 소중한 장소다.
특히 겨울철에 노인정은 한곳에 모여 안부를묻고 세상돌아가는 얘기며 손자얘기를 나누고 장기·바둑으로 시간을 보낼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공원이나 길가에 나가 쉴수 있는 다른 계절에는 공원이나 길가에 나가 적당히 시간을 보낼수 있다.
겨울이 되면 노인정을 찾는 노인들이 더 많아진다.
그러나 추운 겨울은 노인정의 노인들에게는 지내기 힘든 계절이다.
우선 추워서 지내기 불편한 경우가 많다.
내가 다니는 노인정은 4년전 시에서 지어주었다.
3년전에는 한 사회단체의 도움으로 연탄보일러를 설치했다.
또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난방용 연탄 1천7백여장을 시에서 무료로 대준다.
보일러가 낡아서인지 요즘엔 불이 잘들지 않아 걱정이다.
연탄도 부족하다.
30평의 건물에서 춥지 않게 지내려면 난로에 드는 연탄을 포함,하루 연탄20장은 들어가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유지비도 만만치 않다.
시립노인정의 경우 전기·수도세를 무료로 쓰는 혜택을 받고 있지만 그밖의 전화비·비품비등 최소한의 유지비가 10만원은 든다.
회원들에게 월1천원씩 회비를 걷지만 이것도 월례모임때 점심식사 한끼와 소주한잔 마시는 것으로 없어진다.
노인회 회장이나 총무가 아침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동네 유지들을 찾아가 사정을 해야 겨우 노인정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시의 도움을 받는 시립노인정의 경우도 어려움이 많은데 하물며 사설 노인정의 경우는 말할것이 없으리라믿는다.
추운겨울 자물쇠가 잠긴채 문이 굳게 닫힌 노인정이 어디 한두군데인가.
노인들은 외롭고 자활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사회에 기대려고만 하지은 않는다.
나름대로 의미있는 일을찾아 노력하고 있다.
우리노인정은 시간도 보낼겸 용돈도 마련할겸 부근의 전자업체와 교섭해 간단한 마이크 조립작업을 해 월30만원의 수입을 올려왔다.
그러나 이작업도 1월 들어서면서 물량이 없어 중단된 상태다.
노인들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하며 소외되지않도록 하는데는 사회의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할것이다.
한편 기분으로 노인정만지어주고 내팽개치는 일이없어야 되겠고 주변의 노인들을 돌아보고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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