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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예결위의 '작은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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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
이은 기자 중앙일보 기자
식사 정회를 없애고 회의 효율성과 속도를 높인 김재경 국회 예결위 위원장. [뉴시스]
이 은
디지털콘텐트부문 기자

“식사를 위한 정회 없이 계속 회의를 진행합니다. 질의하실 때는 답변을 듣고 싶은 기관장을 미리 특정해 국무위원들이 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십시오.”

 지난 1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재경(새누리당) 예결위원장은 ‘식사 정회’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점심과 저녁 식사를 위해 매끼 두 시간씩 총 4시간 정도 정회하곤 했던 예결위 회의가 종전과 달라졌다. 저녁 식사를 위한 정회는 18일부터 나흘 연속 사라졌고, 북한의 포격 도발 다음 날인 21일에는 점심 정회까지 자취를 감췄다.

 지난 6월 중순 예결위원장에 선출된 김 위원장이 이런 실험을 시작한 것은 “비효율의 상징이 돼버린 국회 회의문화에 작은 변화를 일으키고 싶다”는 바람에서였다.

 그동안 두 시간씩 식사 정회는 국무위원들뿐 아니라 의원들에게도 고역이었다. 국무위원들은 물론 이들을 보좌하는 부처 공무원들도 늦은 밤까지 국회에 잡혀 있어야 했다. 예결위 소속 의원들은 의원들대로 생산성 떨어지는 밤 회의에 참석해 억지로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식사 정회 중 반주로 마신 술 냄새를 풀풀 풍겨 주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의원도 종종 있었다.

 김 위원장은 식사 정회를 없애는 대신 도시락을 등장시켰다. 의원 휴게실엔 예결위원을 위한 도시락을, 회의장 주변 통로에는 국무위원용 도시락을 준비해 질의와 답변을 마친 이들이 간단히 식사할 수 있게 했다. 식사 자리를 분리해 두 곳의 ‘임시 식당’을 따로 마련한 것은 국무위원들과 예결위원들이 뒤섞여 식사하면 ‘창과 방패’의 역할이 모호해질까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국무위원들이 교대로 식사할 수 있는 방안도 고안했다. 가령 예결위 소속 A의원이 “난 B·C·D 장관에게만 질문하겠다”고 예고하면 지명되지 않은 장관들이 그 사이에 식사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회의 시간은 이전과 비슷했지만 폐회시간은 확연하게 빨라졌다. 지난해 7월 16일 열린 회의와 지난 18일 회의의 전체 질의시간은 492분으로 같았다. 하지만 폐회시간은 올해가 지난해(오후 10시52분)보다 2시간30분 빨랐다.

 국무위원들의 반응은 뜨겁다.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은 “과거보다 훨씬 효율적이면서도 심도 있는 심사를 할 수 있었다”며 “식사 중에도 회의 모니터링을 할 수 있었고 우리 부처의 답변이 필요한 내용이면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었다”고 반겼다.

 국회의 개혁을 위해선 거창한 구호보다 ‘작지만 의미 있는’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 김 위원장의 새로운 실험이었다.

이은 디지털콘텐트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