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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이슈] 날아라, 세계일주 화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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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3월 11일 오후 2시 인천공항 아시아나 화물창고 앞에 서 있는 747기는 특유의 불룩한 몸체를 각종 화물로 채우고 있었다. 화물은 국산 휴대전화를 비롯해 홍콩.인도.싱가포르.태국.중국.일본 등에서 생산된 가발과 가죽 옷, 가전제품.완구.게임기였다. 항공사 직원들은 한쪽으로 무거운 것이 몰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미리 계획된 위치에 물건을 차곡차곡 쌓았다. 무게 108.7t, 시가 50억원 상당의 화물을 싣고 문을 닫는 것으로 747기는 40여 시간의 세계일주 비행 준비를 끝냈다.

비행기에 오른 서종식 기장은 각종 계기판을 꼼꼼하게 살폈다. 서 기장과 함께 비행할 3명의 기장과 부기장도 각자 자리를 잡고 비행준비에 들어갔다. 화물 목록을 살펴보니 예상과 달리 반도체나 LCD.휴대전화와 같은 수출 주력품의 비중이 낮았다.

서 기장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인 첨단 전자제품은 대부분 별도의 전세기로 미국 서부나 중부지역으로 거의 매일 운반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10일 오후 11시30분 인천공항에서 로스앤젤레스로 떠난 OZ 2844편(747기)의 화물 100t 가운데 84t(시가 120억원대)이 반도체와 LCD.PDP.휴대전화였다.

이날 오후 3시14분. 세계일주 화물기인 747기는 활주로를 박차고 앵커리지~뉴욕~브뤼셀을 거쳐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는 긴 비행길에 올랐다.

이번 비행에는 40시간이 걸리는 정규노선 사이에 뉴욕~브뤼셀~인천~싱가포르~방콕~인천~뉴욕을 거치는 항로가 더해져 비행시간은 거의 100시간에 달했다.

아시아지역에서 생산한 물건을 인천공항으로 옮기는 일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비행기에는 조종사(총 4명) 외에 본지 취재기자 2명과 주한 미국대사관의 외교관이 동승했다.

세계일주 화물기는 한국이 외환위기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던 1999년부터 뜨기 시작했다. 수출품을 싣고 미국과 유럽에 도착한 화물기가 빈 채로 국내로 돌아오지 않고 미국~유럽, 미국.유럽~아시아 간의 화물운송을 해보자는 취지였다. 세계일주 화물기가 정식 노선으로 자리잡기까지는 국내 산업 구조의 변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무역협회 동북아물류실 최경륜 과장은 "항공편으로 수출하는 고부가가치 상품은 우리나라 수출 주력상품의 판도를 말해준다"고 말했다. 이 항공사 조영석 차장은 "한국에 있던 국내 업체의 생산공장이 동남아나 중국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동남아산 화물이 2001년부터 제법 많이 실린다"고 말했다.

항공편을 이용한 한국의 수출물량은 2004년 상반기 기준으로 57만t으로 전체 수출물량(7027만t)의 0.8%에 불과하다. 하지만 돈으로 따지면 항공편 수출액은 417억여 달러로 전체 수출액(1233억 달러)의 33.8%나 된다. 반도체나 LCD.PDP.휴대전화 등 무게는 덜 나가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수출 상품의 경우 주로 항공기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성능과 디자인이 자고 나면 바뀌는 제품의 특성상 하루만 늦어도 시장점유율에 엄청난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해운에 비해) 30배나 비싼 항공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1일 오후 4시(현지시간) 뉴욕에 도착한 747기는 화물을 내린 뒤 새 화물을 실었다. 정밀기계와 의약품, 실험용 미생물, 의료장비 등이 대부분이었다. 정밀기계는 반도체 등의 제작에 쓰이는 것으로 한국이 최종 목적지였다.

그러나 나머지 화물은 대부분 유럽의 브뤼셀이 최종 기착지다. 브뤼셀에선 다시 의약품과 명품 가방, 참치 등을 실었다.

이렇게 화물기가 40시간의 세계 일주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송수입은 평균 4억2000만원 정도다. 기름값, 영공 통과료, 공항 착륙료 등 소요비용을 빼고도 순수익만 7000여만원에 달한다. 이번 비행에서는 추가된 항로 때문에 수송 수입이 12억원을 웃돌았다. 아시아나의 세계일주 화물기는 주 4회, 연간 208회 운항된다.

아시아나 세계일주 화물기=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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