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의 反 금병매] (7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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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금련은 그날 오후에 서문경과 헤어지면서 왕노파에게서 여러가지 지시를 듣고 보약과 비상을 받아가지고 집으로 건너갔다. 금련은 보약과 비상을 1층 부엌에 숨겨두고 2층으로 올라가 무대가 누워 있는 침상으로 가까이 다가가보았다. 무대가 가늘게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감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눈을 떴다.

"당신 이제 왔어? 또 그놈 만나고 온 거야? 크윽, 컥."

무대가 말을 잇지 못하고 상체를 들썩거리며 괴롭게 기침을 토하였다. 금련은 침상 옆에 덜썩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 사람을 만나고 왔어요."

"그래 남편 이 모양 만들어놓고 외간남자랑 놀아나는 재미가 어떻던가? 천벌을 받지, 천벌을. 크윽, 크윽. 아이쿠, 가슴이야."

무대가 기침을 토하는 동안 금련은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토하였다.

"아니, 당신이 왜 우는 거요? 내가 불쌍해서 우는 건 아니겠고."

무대가 기침이 진정되자 침상 옆에서 들려오는 금련의 울음소리가 의아해 물었다.

"오늘 그 사람을 만났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놀아난 것은 아니에요."

하긴 오늘은 두 사람이 교합에 실패하였으니 놀아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금련이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을 만나 헤어지자고 말하고 왔어요. 남편까지 병들어 누워 있는데 외간남자랑 놀아날 수는 없다고 했어요. 정말이지 당신이 병들어 고통 중에 있는 것을 보니 양심에 가책을 받아 이제는 도저히 그 남자를 만날 수 없더라고요. 그래 결국 오늘 헤어지자고 말하고 왔어요."

"그 말 하고 오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걸렸나? 만리장성을 쌓고 왔구먼."

"그 사람이 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자꾸 자기에게로 오라고 하는 거예요. 당신과 이혼을 하고 자기에게로 오면 첩이 아니라 본부인이 되게 해주겠다나 어쩐다나. 그러나 나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했어요. 그래도 그 사람이 나에게 매달리며 사정을 하는 거예요. 그 사람을 달래고 오느라 이렇게 늦은 거예요."

"장한 일을 하고 왔구먼. 그놈이 주먹으로 나를 때리고 발로 가슴을 차서 이렇게 병신이 되게 한 것은 어떻게 보상을 해준다고 하데?"

무대는 아직도 금련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그 사람이 거기에 대해서는 충분히 다 보상을 해주겠다고 했어요. 제발 없던 일로 해주기만 하면 자기 재산 절반이라도 떼어줄 수 있다고 했어요."

금련은 계속 흐느끼며 말을 이어갔다.

"그놈 재산은 있는 놈인가? 얼마나 빨리 달아나는지 그놈 면상도 제대로 보지 못했네."

"우리 청하현에서 제일가는 부자예요. 그 사람이 보상을 해주면 우리는 한평생 먹고 살 수 있어요. 그러니 없던 일로 해주세요. 이제 나도 당신 간호 잘 하고 집안일 잘 챙기고 영아도 잘 돌볼게요. 흐윽, 정말이에요. 그동안 내가 당신에게 못할 짓 많이 했어요. 절 용서해 주세요. 흐윽, 흐윽."

무대가 드디어 금련의 눈물에 속아 그녀의 말을 믿으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졌다.

"허허, 정말 당신 마음 잡았소? 그렇게만 된다면야 그야말로 새옹지마요, 전화위복이구려."

무대의 얼굴에 오랜만에 생기가 돌아왔다.

"우선 당신 가슴부터 낫도록 해야겠어요. 내가 달려가서 가슴 통증에 좋은 약을 지어 올 테니 잠시 기다리세요."

"그래주면 참 고맙겠소. 나도 빨리 일어나 호떡을 팔러 나가야 할 텐데."

금련은 현관을 나섰다가 얼마 후에 다시 집으로 돌아와 1층 부엌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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