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마디] “이것을 신용 사기라 부른다. 어째서? 당신이 나를 믿기 때문에? 아니다. 내가 당신을 믿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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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신용 사기라 부른다. 어째서? 당신이 나를 믿기 때문에? 아니다. 내가 당신을 믿기 때문이다.”
-『미술품 위조 사건』(래니 샐리스베리, 앨리 수조 지음) 중에서

위작 범죄 논픽션인 이 책은 데이비즈 마멧의 『위험한 도박』 중 한 구절인 위 문장으로 시작한다. 책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범죄자가 그럴싸한 모작 만들기가 아니라 그럴싸한 기록 문서 만들기에 훨씬 더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눈으로 실제 작품의 진위를 판별하는 것에는 보는 이의 주관이 개입되기에, 소장 이력 같은 문서의 뒷받침에 전문가들이 기댄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전시장 뒤켠,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기록보관실의 중요성은 범죄자가 먼저 알아보았다. 작품 이력 조작이 런던 테이트 미술관 아카이브를 중심으로 벌어진 이유다. 책은 기록보관실에 대해 아래와 같이 기술하고 있다.
“기록보관실의 가치는 그것의 총체성으로 판가름되었다. 각 문서는 앞선 문서의 진실성을 확인시켜주고 그 다음 문서를 뒷받침해주었다. 만약 단 하나의 문서가 변경되었다면, 수집된 문서 전체의 신뢰도가 훼손될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기록보관실을 뜻하는 영어 ‘archive’는 ‘정부’ 또는 ‘질서’라는 뜻의 그리스어 ‘arkhe’에서 유래되었다. 그 반대는 ‘무정부’라는 뜻의 영어 ‘anarchy’로, 규칙도 질서도 없는 상태를 뜻한다. 부스는 드류가 정확히 이 상태와 관련이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시스템을 부수고 혼란을 야기했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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