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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페셔널은 위로를 바라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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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JTBC 정치부 차장대우

경쟁 상대가 우리 편보다 더 멋있을 때가 있다. ‘프로 근성’을 보여주는 플레이어는 적을 매혹시킨다. 임진왜란 때 왜장 와키자카가 한산대첩에서 패한 뒤 “가장 미운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숭모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다”고 했다는 일화가 대표적이다. 프로페셔널의 진가는 역사적 전투에서뿐만 아니라 평소 행동 패턴에서도 나타난다.

 뛰어난 공격력으로 인기를 모으는 프로야구의 미국인 선수 에릭 테임즈(NC 다이노스)가 최근 중앙일보 인터뷰(8월 12일자 28면)에서 한 말이 좋은 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아니라 누가 와도 난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 측의 면담 요청을 훈련 때문에 거절했다는 일화에 대한 답변이었다. 매일 똑같은 훈련인데도 중요한 이유는 “그렇게 해야 자신감이 생기고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이었다. 기량을 끊임없이 점검하고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프로다운 자기 관리다.

 KLPGA 선수 김세영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골프화를 벗었다가 발가락 양말이 공개됐다. 한창 꾸밀 나이인 만 22세 여성 골퍼는 민망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발가락에 힘을 더 모을 수 있어서 장타가 나온다”고 비밀을 털어놨다.

 고국 대사와의 만남을 미루고, 부끄러운 발가락 양말을 마다하지 않는 프로의 열정은 아름답다. 꼭 최고의 성적을 내지 못하더라도 그들은 사랑과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다. 설사 팬들이 외면한다 해도 그들은 묵묵히 자신의 훈련 루틴을 이어갈 것이다. 누구를 탓하거나 위로받으려 하지 않는 것이 프로의 근성이다. 어설픈 위로는 오히려 치욕적이다. 그래서 프로는 아름답지만 외롭다. 처절한 자신과의 싸움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프로답게 움직여야 할 곳을 꼽는다면 대한민국의 안보 컨트롤타워다. 남북이 대치한 채로 통일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전 세계적인 난제가 주어져 있다. 그래서 최고의 ‘프로페셔널 공직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국가정보원은 불법 감청 의혹으로 만신창이가 됐고, 국방부는 북한 지뢰 폭발 사건으로 흙먼지에 휩싸였다. 해법을 찾아가는 모습도 전혀 프로답지 않다. 디테일이 필요한 상황은 대충 넘어가고 뒤늦게 해명하려다 의혹을 키운다. 숨진 국정원 과장의 차량 번호판 색깔이 CCTV에 다르게 비춰질 수 있는 민감한 팩트에 둔감하고, 지뢰가 터진 다음 날 북한에 대화를 제의하는 아이러니를 방치하는 식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집권 여당 일부에선 “국가 안보를 위해 그들에게 손가락질해서는 안 된다”고 두둔하고 있다. 안보 컨트롤타워는 그래도 속사정을 이해해주는 같은 편의 지원사격이 고마울까. 그 말이 위로가 됐다면 이미 프로가 아니다.

김승현 JTBC 정치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