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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창조 금융? ② 다음카카오에 물어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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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이정재
논설위원

‘○○페이’ 전쟁이 뜨겁다. 모바일 결제 시장이 급팽창하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1조원이던 모바일 간편 결제는 올 1분기 5조원으로 5배 커졌다. 이 시장을 노리고 대기업까지 몰려들었다. ‘페이나우(LG유플러스)’‘케이페이(KG이니시스)’‘네이버페이(네이버)’‘티몬페이(티켓몬스터)’‘옐로페이(인터파크)’‘페이올(BC카드)’‘시럽페이(SK플래닛)’‘스마일페이(옥션·G마켓)…. 삼성도 다음달 뛰어든다. 바야흐로 ‘○○페이’ 전국시대다.

 국내뿐 아니다. 눈을 들어 세계를 보면 전쟁은 더 치열하다. 절대강자 미국의 페이팔에 맞서 애플·구글이 뛰고 있다. 중국 알리바바·텐센트의 위세는 또 얼마나 대단한가. 세계 모바일 결제 시장은 2017년 70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걸 움켜쥐는 절대 승자가 나올 때까지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여기엔 국경도 국적도 필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만큼 준비돼 있나. 늦어도 한참 늦었다. 허울 좋은 정보기술(IT) 강국, 핀테크 기술 강국 소리도 낯간지럽다. 책임은 정부와 규제에 있다. 공인인증서 의무 사용 규제는 올해 비로소 풀렸다. ○○페이가 이제야 쏟아져 나오는 이유다.

 국내 선구자는 다음카카오다. 그 다음카카오의 이석우 대표는 이런 현실에 울분을 토했다. 지난 5월 열린 핀테크 학술대회에서다. 그는 준비한 원고를 던지고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고 한다. 마침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참석한 자리였다.

 “오늘 막말 좀 하겠다. 정말 울고 싶다. 스마트폰으로 소액의 돈을 보내는 뱅크월렛카카오 서비스 출시에만 무려 2년 반이 걸렸다. 2012년 3월 이 서비스를 기획했는데 금융당국의 보안성 심의 통과에만 1년 반이 걸렸다.”

 그나마 하루 송금액은 10만원이 고작이었다. 중국의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위어바오의 잔액이 100조원이니 경쟁이 될 턱이 없다. 그는 “이게 다 규제 때문”이라며 “큰 기업인 다음카카오도 이렇게 힘든데 작은 스타트업은 더 말할 필요도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오죽하면 그가 이런 얘기를, 그것도 금융위원장을 앞에 놓고 했을까. 그런데 이게 다였을까. 나는 그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것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부 규제만 없었다면 (알리바바 회장인) 마윈보다 내가, 알리바바보다 다음카카오가 잘나갔을 것이다.”

 이석우가 울분을 토하던 시각, 마윈은 인도 총리 모디와 만났다. 인도 전자상거래 시장 진출을 위해서였다. 사흘 뒤인 5월 18일엔 한국을 찾아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만났다. 최 부총리는 마윈에게 한국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요청했다. 마윈은 “연내에 한국형 알리페이인 ‘코리안페이’를 출범하려 한다”고 화답했다. 알리바바의 세계 전자상거래 첫 국가전용관인 ‘한국관’도 개통했다. 한국을 찾는 중국 유커들이 한국에서 알리페이로 물건을 살 수 있게 됐다. 마윈은 1년 새 세 차례나 한국을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도 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원하던 것을 다 얻어낸 셈이다.

 알리페이는 마윈 회장이 ‘코리안페이’ 구상을 밝히기 전 이미 국내 편의점과 백화점 2만여 곳에 결제시스템을 구축했다. 국내 기업들이 수년간 해도 안 되던 것을 단 두 달 만에 해치웠다. 지난해 9월 출범한 카카오페이의 가맹점은 겨우 158개다.

 2년 반 전 당국의 규제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현실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다음카카오의 이석우 대표가 중국 주석 후진타오의 초청을 받아 영빈관인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환담을 나눴을지도 모른다. 중국 총리 리커창의 요청을 받고 ‘속으론 거만하지만 겉으론 더없이 착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연내에 중국형 카카오페이인 ‘차이나페이’를 출범하려 한다. 중국 정부가 많이 도와 달라.”

 잘할 수 있는 국내 기업의 싹은 잘라놓고 엉뚱한 외국 기업에 손 내미는 짓, 이제는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 대통령부터 “한국 금융, 우간다 수준”이라며 꾸짖지만 말고 제발 ‘족쇄 규제’나 먼저 풀었으면 좋겠다. 늦었지만 그래도 뭔가 해보겠다며 쏟아져 나온 ‘○○페이’들의 뒷다리만이라도 제발 잡지 말라는 말이다.

이정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