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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강신주 대중철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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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 김선우(1970~ )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중에서

둘이면서 둘이 아니고
하나일 수도 없는 진짜 사랑

세상 시인의 90%는 가짜다. 진짜 시인이란 누구인가? 남의 제스처 아닌 자기 몸으로 살고, 자기 몸으로 살아낸 것을 자기 언어로 말하는 사람이다. 선생의 제스처를 따라 살아야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래서 진짜 시인이 나오기 힘든 거다. 시인은 흉내 내지 않고, 그 사람이니까 쓸 수 있는 것을, 제 몸으로 진짜 살아간 것을 쓰는 사람이다.

그 기준으로 보면 남자는 김수영, 여자는 김선우가 최고다. 김수영은 서정주처럼 아름답지는 않지만 읽어보면 ‘딱 김수영’이다. 스스로도 말한 바 있다. “시작(詩作)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김수영이 가부장적인 구석도 있는 남자라면, 김선우는 여자다. 남자가 모르는 여자를 쓴다. 너른 여자, 앙칼진 여자…. 강의할 때도, ‘여자를 모른다면 김선우를 읽으라’고 말한다.

 시인은 이 시에서 사랑은 둘이면서 둘이 아니고, 그렇다고 하나도 아니라고 말한다. 완전히 둘이면 남이고, 그렇다고 완전히 하나가 돼서도 안된다. 원효의 ‘불이(不二)’ 사상에 닿는 사랑의 원리다. 사랑에 대한 깊이, 에로티시즘까지 버라이어티하게 담아낸 매력적인 시다.

강신주 대중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