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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교과 이기주의에 휘둘리면 교육개혁 못 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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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호 02면

교육과정은 한 나라의 교육 나침반이다. 국가의 미래 인재인 초·중·고생이 학년별로 배울 내용과 범위, 교수(敎授)법, 그리고 평가(입시)까지를 망라해 정하는 프레임이다. 교실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흥미와 부담은 물론 창의력·실력이 확 달라진다. 튼실한 교육과정은 그만큼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교육부가 추진 중인 ‘2015년 교육과정 개정’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지대하다. 교육부는 다음달 말 확정 고시를 앞두고 지난 6일 총론 시안을 발표했다. 바른 인성과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문·이과 통합교육과 학습량 경감, 공동체 의식 강화에 나서겠다는 게 골자다. 대표적인 예가 초등 안전생활 교과 신설, 중학교 진로탐험 자유학기제, 고교 통합사회·과학 및 한국사 필수 과목화 등이다. 이를 2017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해 현 정부의 4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교육개혁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같은 날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교육부에 힘을 실어줬다. “창의성을 갖춘 인재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라며 “학생의 꿈과 끼를 키우는 교육개혁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또 “학업 부담이 가중되고 학교교육이 왜곡되지 않도록 수능 난이도를 안정화해 공교육 정상화의 토대를 쌓겠다”고 했다.

 하지만 과연 교육부가 박 대통령의 주문대로 개혁에 힘을 쏟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1년을 준비했다는 교육과정 개정안이 학계 압력에 크게 흔들린 데다 실행계획도 엉성하다. 개편의 핵심인 고교 통합사회·과학 과목만 봐도 그렇다. 고교의 문·이과 칸막이를 없애 학생들의 과목 편식을 해소하겠다는 취지인데 그 내용이 모호하다. 과학의 경우 생물·화학·물리·지구과학의 단원 분량 조절이 필수다. 그런데 각 학계가 반발하자 단원별 나열 수준에 그친 인상이다. 학습량만 늘어나고 어려워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수학도 논란이다. 학생 절반 이상이 ‘수포자(수학포기자)’라는 지적을 받자 공부량 20% 감축을 호언하더니 수업 시간만 줄이는 데 그쳤다. 수학계가 “일본은 학습량을 줄인 유토리(餘裕) 교육의 실패를 반성하고 다시 늘렸는데 우리는 거꾸로 간다”며 반발하자 어정쩡하게 봉합했다.

 개정안이 확정되는 다음달 말까지 과목별 세(勢) 다툼이 거세질 게 뻔하다. 오죽하면 2007년 예·체능 과목을 축소하려던 김신일 교육부총리가 “교육개정은 상상을 초월하는 권력투쟁”이라며 손을 들었겠는가. 교육개혁의 동력인 교육과정 개편의 성패가 교과 이기주의 극복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그런 뼈아픈 교훈을 수도 없이 경험한 교육부가 또다시 좌고우면하는 건 명백한 직무유기다.

 더 중요한 것은 입시다. 교육과정 개편을 포함한 교육개혁은 종국에는 입시와 연결된다. 그런데 교육부는 어떤 과목이 어떻게 수능과 연계되는지에 대해선 묵묵부답이다. 박 대통령까지 대입을 언급했는데 핵심인 수능 연관성을 빼먹었다. 연계가 안 되는 과목을 담당하는 학계·교사들의 반발을 우려한 것이다. 행여 대통령이 개혁을 주문하니까 일단 소나기만 피하자는 의도가 아닌가.

 교육부는 최종안 고시 때 입시와의 연계성을 반드시 밝히기를 바란다. 그래야 공교육 정상화의 토대와 학생·학부모의 신뢰가 쌓인다. 만일 이번에도 어물쩍 넘어간다면 박 대통령 말대로 후손(학생)들은 10배, 100배의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이는 교육부 존치 여부와 직결되는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