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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자본론』 완역 김수행 교수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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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2007년 11월 정년퇴임을 앞둔 김수행 서울대 교수가 고별 강의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국의 대표적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1일 오전 1시30분(미국 현지시간 7월 31일 오전 10시30분) 미국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73세.

 고인이 이사장으로 있는 한국사회경제학회(운영위원장 박지웅)는 “방학을 이용해 미국에 있는 두 아들을 보러 지난달 24일 출국해 머물다 심장마비로 타계했다”고 2일 밝혔다. 갑작스런 별세로 인해 장례식은 3일 오후 3시 미국 유타주 모압(Moab) 장례식장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현재 부인과 두 아들이 모압에 함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2005년 세상을 떠난 정운영 경기대 교수 등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1세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이끈 이론가로 손꼽힌다. 그의 이름이 대중적으로도 알려진 것은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1990년 완역해 내면서다. 『자본론』은 87년 당시 농협에 다니던 대학원생 강신준(동아대 교수)씨가 익명으로 독일어 원서를 번역해 출판했고, 고인이 영어판을 번역해 내면서 널리 읽히기 시작했다.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마르스크 경제학 내에도 여러 흐름이 있는데 고인은 『자본론』에 원론적으로 접근해 그 이론으로 세계·한국 경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고인은 42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대구상고를 졸업하고 61년 서울대 상대(경제학과)에 입학해 학사·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시절 동아리 ‘경우회’에서 활동하며 ‘정치경제학 비판’에 눈을 떴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장명국 ‘내일신문’ 대표, 고(故)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경우회 선후배들이다.

 그후 외환은행에서 6년간 일했다. 72~75년 외환은행 런던지점에서 근무하던 중 74년 무렵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석유 파동을 겪으며 경제 공황에 관심을 갖고 마르크스 경제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되었다. 그의 런던행을 도와준 인물 중에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 이름이 나온다. 고인이 외환은행 조사부 근무시절 재무부에 파견을 갔는데 당시 이재국장이 이용만씨였다.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됐던 고인은 이씨의 도움으로 런던행 여권을 받을 수 있었다.

 82년 런던대에서 마르크스 공황론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는데 학위 논문 제목에서 마르크스주의라는 단어를 뺐다(박사학위 논문 제목 : Theories of economic crises : a critical appraisal of some Japanese and European reformulation). 당시 『자본론』이 금서였던 국내로 돌아올 상황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박사학위를 받은 해에 한신대 무역학과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학내 민주화 투쟁을 주도하다 87년 해임됐다. 하지만 6월항쟁에 이은 학문자유화 바람에 힘입어 89년에 서울대 교수로 임용됐다. “진보적인 학문을 배우고 싶다”는 당시 서울대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의 지지가 바탕이 되었다. 당시 33명의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가운데 그는 유일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전공자였고, 2008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그같은 상황은 계속됐다.

 국내 제도권에 마르크스 경제학 연구의 기초를 놓은 고인은 청소년과 일반 대중을 위한 해설서를 쓰고 강연을 하면서 마르크스 경제학의 대중화에도 힘을 기울였다. 또 『자본론』뿐 아니라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도 완역했고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 『청소년을 위한 국부론』을 나란히 펴내기도 했다.

 서울대 정년퇴임 후에도 성공회대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언론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2010년 민주노동당에 입당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지난해 낸 『자본론 공부』(돌베개)가 마지막 책이 됐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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