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가 선전하던 경기장에 다윗의 별이 뜬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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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비스는 기원전 2세기 그리스로부터 유대의 독립을 이끈 지도자들이다. 구약 마카베오서(가톨릭에서는 정경, 개신교에서는 외경)의 주인공들이다. 1920년대 이후엔 전세계 유대인의 스포츠·문화 교류를 위한 단체 이름이 된다. 1929년부터 유대인 올림픽 마카비 대회도 연다.

올해로 14회째인 유럽 마카비대회가 지난 27일(현지시간) 막을 올렸다. 그 장소가 베를린 올림픽 경기장들이다. 유대인에겐 참혹한 기억이 어린 곳이다. 나치의 선전장이 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 열렸던 곳이다. 아돌프 히틀러가 “11회 베를린 올림픽의 개막을 선언한다”고 외친 곳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 등 일부 선수단은 당시 히틀러에게 나치식 경례를 했다. 독일 대표팀에선 유대인들이 완전 배제됐다. 유대인 대학살의 서막이었다.

그로부터 79년 만에 처음으로 베를린에서 유대인 축제가 열린 것이다. 나치의 스와스티카가 있던 자리에 '다윗의 별’이 뜬 셈이다. 개막식은 원형경기장에서 열렸다. 축구 예선전은 나치 문양 정도만 사라졌을 뿐 당시와 비슷한 외관을 한 스타디움에서 치러졌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선수들이 주위 환경을 무시하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듯 했다”고 전했다.

알론 마이어 대회 조직위원장은 “2차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역사적 화해의 상징으로 대회 장소를 독일로 정했다”고 말했다. 선수들도 역사적 의미를 의식하고 있었다. 골프에서 메달을 노리는 레오 프리드만(61)은 “유대인들이 독일 사회의 일부이고 결코 쫓겨나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실제 유대인들로선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한다. 오렌 오스터러 조직위 국장은 “유럽 유대인 사회에서도 베를린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젊은 세대들이 과거를 잊지 않지만 이젠 베를린에서도 대회를 치를 때라고 나이든 세대를 설득했다”고 전했다. 리투아니아 수영 선수인 소피아 파빈스카이트는 “홀로코스트로 리투아이나 유대인들 대부분 가족을 잃었다”며 “독일인이 저지른 일을 (경기 중인 지금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은 개막식에서 “이 나라와 이 도시에서 유대인 대회를 치를 수 있게 돼 너무나도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마카비 대회는 축구·수영·펜싱 등 종목에서 10일 간 치러진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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